단군 신화」는 여러 문헌에 실려 있다고 한 바 있다. 그런데 각 문헌마다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삼국유사』보다 10여 년 뒤에 나온 이승휴의 『제왕운기 (帝王韻紀)』중의 단군 기록은 『삼국유사』와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① 『삼국유사』에서는 壇君'이라 했는데, 『제왕운기』에서는 '檀군이라 하였다.
② 『삼국유사』에서는 환웅이 웅녀와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고 했으나, 『제왕운기』에서는 단웅(檀雄)이 손녀에게 약을 먹여 인신(人身)을 이루게 한 뒤 단수신(壇樹神)과 결혼시켜 단군을 낳았다고 하였다.
③ 『삼국유사』에는 고조선의 강역에 대한 기록이 없으나, 『제왕운기』에는 신라, 고구려, 남·북옥저, 동·북부여, 예맥 등을 그 치하에 두었다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나 하여야겠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기 (檀紀)는 도대체 어떻게 산출된 것인가? 『삼국유사』에는 단군 개국이 중국의 요(堯) 임금 즉위 50년인 경인년(庚寅年)에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그러나 일연 자신이 주석을 달아놓은 바와 같이, 요 임금 즉위 원년은 무진년(戊辰年)이므로 즉위 50년은 정사년(丁巳年)이지 경인년이 아니다. 반면 이승휴의 『제왕운기』, 권람의 『응제시주』, 『동국통감(東國通鑑)』에는 '무진년(戊辰年)으로 되어 있다. 모두 단군이 요 임금과 같은 해에 즉위하였으며, 그해는 '무진년'이라는 것이다. 이 요 임금 즉위 연도인 '무진년'을 연대로 환산해 보면 B.C. 2333년이 된다. 오늘날 단기(檀紀), 즉 '단군 기원(檀君紀元) 몇 년'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