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성령의 조명’과 ‘성경의 문맥’에 의지하여 해석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것들은 문맥을 보아도 그 의미를 잘 알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산상수훈이나 바울서신 같은 설교나 편지들은 문맥에 주의하면 대개 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복음서나 사도행전에 나오는 특히 본문과 같은 일화나 대화체의 글들은 문자적인 문맥이 상대적으로 불분명합니다. 그래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것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구절들을 바르게 해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법은 단지 문자적인 문맥이 아니라 그 단락의 주제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에 흐르는 사상의 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문자적인 문맥이 아니라 사상의 문맥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결과 그 의미가 자연스럽게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상상의 산물인 주관적인 해석이 아니라 열린 마음을 가진 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객관적인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자주 강조하는 ‘원만한 이해’에 도달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본서를 통해 이에 대한 두 가지 실례를 보시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두 가지 난해구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뿐 아니라 더욱 중요한 성경해석에 필요한 원리를 체득하시게 될 것입니다.
목차
제1장 | 난해한 성구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요 20:23)
(1) 먼저 중요한 것은 이것이 누구에게 하신 말씀인가 하는 점이다. (2) “성령을 받으라!” 는 명령은 사도들이 갖춰야 할 자격에 대한 것이다. (3) 죄를 사하거나 그대로 둔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치리권을 말한 것이다.
제2장 | 본문의 주제와 사고의 흐름은 무엇인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마태복음 11:11)
(1) 이 대화의 발단이 된 세례 요한의 질문이 누구에게 대한 것인가? (2) 이 대화의 전개과정에서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누구와 비교하셨나? (3) 이 대화의 기준이 예수님에 대한 이해였다는 또 다른 증거가 있는가?
저서 대표작인 『능력으로 관통되는 복음!』을 비롯하여 『예정론의 최고난제: 토기장이의 비유 풀이!』, 『다이아몬드 같은 진리!』, 『정통보다 더 성경적인 교회!』, 『십일조 대논쟁!』,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등 119권의 저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