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게 꽃 피우지 않지만
쌀 한 톨 고이 품어 사람을 먹여 살리는 ‘밥꽃’
그 생명력에 빚진 사람의 목숨
소박하지만 찬란한 그 이름을 불러보자!
벼나 콩에도 꽃이 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체 벼나 콩 어디서 꽃이 피었다 진단 말인가? 논밭에서 평생을 보낸 농부들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치기 쉬운 곡식꽃, 채소꽃. 그도 그럴 것이 일단 작고 볼품없다. 형형색색 화려한 꽃잎과 탐스러운 이파리에 둘러싸인 꽃들에 비해 이 책에서 보여주는 꽃들은 ‘이게 꽃이라고?’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이 책은 장영란, 김광화 부부가 농사를 지으며 만난 60가지 곡식꽃, 채소꽃을 글과 사진으로 남긴 9년간의 기록이다. 저자는 우리 밥상에 매일같이 올라와 사람을 먹여 살리는 이 꽃들을 ‘밥꽃’이라 이름 붙이고, 사람의 ‘목숨꽃’이라 여겼다. 이들의 지극하고 유별난 밥꽃 사랑은 단순히 꽃을 즐기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밥꽃이 어떤 과정을 통해 사랑을 하고 꽃을 피우는지, 내가 키우는 밥꽃(농작물)은 언제 어디서 들어왔는지, 이들의 가계(家系)는 어떻게 이어져왔는지 등 공부하는 과정이 뒤따랐다. 또한 한자와 우리말이 뒤섞여 어려운 식물 용어를 되도록 한글말로 (한자가 더 알아듣기 쉬울 때는 한자로) 정리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저자 김광화는 꽃을 피우는 그 짧은 시간을 보기 위해 새벽마다 카메라를 챙겨 들고 어둠 속으로 나갔다. 쌀 한 톨, 마늘 한 쪽 그리고 옥수수 한 알에 담긴 밥꽃의 생명을 ‘마중’하러 나갔던 길. 그 여정을 통해 만난 것은 그저 밥꽃 하나가 아니라 사랑과 생명 그리고 자연에 대한 귀중한 가치였다.
꽃의 ‘아름다움’보다 ‘생명’을 꽃피우기 위해,
그 생명이 만들어내는 우리의 한 끼
꽃잎, 꽃받침, 수술 그리고 암술을 갖춘 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꽃’의 구조다. 하지만 밥꽃의 가장 대표인 벼꽃에는 그 흔한 꽃잎도 없다. 그냥 껍질이 벌어졌다 닫힌다. 그래서 벼꽃은 ‘피는’ 게 아니라 ‘이삭이 패는’ 것이다. 벼꽃이 초라한 데는 나름 중요한 이유가 있다. 식물은 꽃을 피우기까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래서 벼는 제대로 된 ‘꽃’을 피우지 않고 ‘씨앗’을 남기는 것이다. 이렇게 벼꽃 한 송이가 피었다 져야 겨우 한 쌀 톨이 된다. 그것도 날씨가 나쁘거나 영양상태가 안 좋거나 벌레가 못살게 굴면 허탕이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먹는 쌀 한 톨에 벼꽃 한 송이의 ‘드라마’가 숨겨져 있다.
요즘 꽃이나 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정작 우리를 먹여 살리는 꽃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사실 열매를 맺는 모든 작물은 꽃을 피운다. 식물의 생장기를 ‘한살이’라고 하는데, 자기 몸이 자라는 영양생장기를 거쳐 꽃 피고 씨 맺는 생식생장기로 마감한다. 그중에서도 벼나 콩은 씨앗을 먹기 위해 기르니 영양생장기만이 아니라 생식생장기까지 ‘한살이’를 마쳐야 사람이 거두어 먹는다. 하지만 배추, 무 등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작물은 수확한 이후 밭을 갈아버린다. 애초에 뿌린 씨앗도 종자회사에서 육종한 씨앗이니 다시 받아봐야 소용이 없다. 어차피 씨를 다시 사다가 심어야 한다. 저자는 이런 구조가 반복되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가 먹는 것이 자연에서 왔다는 사실조차 잊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밥꽃에 대한 작업은 이러한 안타까움에서 시작되었다.
20여 년간 맛본 수확의 기쁨만큼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