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통역을 통해 언어를 ‘전달받는다’고 생각하지만, 그 전달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좀처럼 보지 않는다. 통역사는 늘 시야 안에 있으면서도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고, 복잡한 판단과 신체적 조율의 과정은 기록되지 않으며, 실패는 개인의 문제로 환원된다.
『투명한 노동의 정치학』은 이 익숙한 구조를 정지된 화면처럼 바라본다. 통역 노동을 둘러싼 투명성의 규범, 결과만 남기고 과정을 지우는 제도,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완벽함의 요구, 그리고 이 비가시화를 유지하는 권력의 지층을 분석한다.
특히 수어통역을 중심으로, 통역사의 비가시성이 어떻게 농인의 언어권·감정접근권·참여권을 축소하는지 드러내며, “접근성”이라는 말 뒤에 어떤 정치적 조건이 숨겨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통역을 기술이 아니라 권력의 배치로 바라보는 새로운 시도이자, 언어권을 다시 사유하게 만드는 날카로운 비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