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의를 배웠다고 생각한다. 시험문제로, 교과서의 굵은 글씨로, 위인의 명언으로. 정의는 늘 그럴듯한 문장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 “의무를 따르는 행위”. 그러나 막상 월급날이 되면, 우리는 다른 질문 앞에 선다. 왜 나는 이만큼밖에 받지 못하는가. 왜 저 사람은 저만큼을 받는가. 그 순간 정의는 철학자의 언어가 아니라, 통장 잔고의 숫자가 된다.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면 또 다른 정의가 기다린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층간소음을 떠올리고, 주차선 위에 비스듬히 서 있는 차를 보며, 우리는 속으로 판결을 내린다. “저건 잘못이다.” “저건 너무한 거 아닌가.” 하지만 곧이어 이런 속삭임도 따라온다. “이번 한 번쯤이야.” “나도 힘들었으니까.” 정의는 그렇게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하루에도 몇 번씩 뒤집히는 마음의 저울이다. 이 책은 강의실의 사고실험이 아니라, 편의점 계산대와 단톡방, 배달 앱 화면, 회사 회의실에서 벌어지는 현실의 충돌을 다룬다. 정의는 멀리 있지 않다. 성과급 봉투를 열어보는 순간, 노키즈존 안내문을 읽는 순간, 리셀가를 확인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철학자가 된다. 다만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