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은 늘 옳지 않지만, 판단은 늘 요구된다
디자인을 시작할 때 우리는 종종 옳은 답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문제를 충분히 분석하고, 사용자를 이해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도출하면 결국 가장 좋은 디자인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책에서, 강의에서 배운 디자인은 대체로 이런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 오래 남아 있을수록 이 믿음은 조금씩 흔들린다. 현장은 옳지 않은 상태로 움직이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항상 시간이 부족하고, 예산은 줄어들며, 결정권자는 바뀌고, 요구 사항은 계속 추가된다. 사용자에 대한 이해보다 내부 합의가 앞서고, 논리보다 분위기가 판단을 좌우한다. 이런 환경에서 디자인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이너에게는 판단이 요구된다. 옳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선택을 해야 하고, 불완전한 조건 속에서도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좋은 디자인을 만드는 법이 아니라, 그런 환경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판단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현장은 디자이너를 보호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계속해서 시험한다. 그 시험을 통과하는 기준은 재능이 아니라 판단의 태도다. 이 책은 그 태도를 정리하기 위해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