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가까워지면 도시는 미묘하게 달라진다. 지하철 출구 앞에서 나눠 주는 전단의 두께가 달라지고, 횡단보도 건너편 현수막의 문장도 더 단단해진다. 퇴근길 버스 안에서는 이어폰을 낀 사람이 많아 보이지만, 누군가는 스마트폰 뉴스 알림을 흘끗 보고 고개를 든다. 동네 카페에서는 노트북을 펴 놓고 일하던 사람이 갑자기 화면을 접고, 옆자리에서 들려온 정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시장 골목에선 채소값과 날씨 이야기가 오가다가도 어느 순간 “이번엔 좀 바뀌려나”라는 말이 나온다. 말은 짧다. 그러나 짧은 말 하나가 끝난 뒤 이어지는 침묵은 생각보다 길다. 우리는 대체로 그 침묵을 놓친다.
민심을 읽는다는 말은 그럴듯하다. 뉴스 채널도 쓰고, 정치인도 쓰고, 유권자도 쓴다. 그러나 실제로는 서로 다른 것을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에게 민심은 여론조사 수치다.
누군가에게 민심은 유튜브 영상의 댓글창이다. 누군가에게 민심은 동네 어른들의 분위기이고, 또 누군가에게 민심은 직장 회의실에서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는 표정이다. 같은 단어를 쓰지만 각자가 붙잡는 현실은 다르다. 문제는 이 차이가 드러나지 않은 채 “민심은 이미 움직였다”는 식의 단정이 너무 쉽게 생산된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