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화

원서발췌 매천야록

황현
지식을만드는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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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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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발췌 매천야록
듣기기능TTS지원파일정보EPUB
총 용량6.8 MB이용기기
ISBN9791143021465
책 소개
고종이 즉위한 1863년 전후부터 1910년 한일 합방 조약으로 대한제국이 멸망하기까지 48년간의 정치·사회·민족·문화 등을 생생하게 담아 낸 필기류筆記類다. 이 책에서 독자는 다른 사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구한말 개화와 보수, 침략과 저항의 소용돌이를 경험한 지식인의 날카로운 비판 정신을 보게 될 것이다.
목차
권1 상, 갑자년1864∼정해년1887
운현궁
장동 김씨
국혼
김흥근의 별장
세도
대원위 분부
태산을 평지로
원납전
만동묘
서원
당백전과 청전
천주교인 남종삼
도모지
해인사 경판각
운현의 청지기
운현의 사람 쓰기
종친과
포량미
북촌과 남촌
어재연의 순절
잠영록
산림
대원군이 실각한 이후
척양비
최익현의 상소
최익현의 생활
대원군의 10년 통치
십 년 세도
운현궁 쪽 사람
전주 아전
김상현
다산 정약용
다산 정약용의 기억력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거벽·사수
조흘강과 매좌
과거시험장
지방에서 보이는 시험
과거 매매의 값
가수와 실재
낙폭전
석 돈 진사
궁중 연회
신분제도
무과제도
무관명가
신래
유가
대원군의 수완
나합
우두법의 시행
학질의 금계랍
석유
개항 이후의 수입품
영선사 김윤식
전환국
북관묘
화륜선 구입
임오군란
대원군의 재집정
문묘종사
복제 개혁
민영익의 저택
개항
과거 매매
토문강 국경선
육영공원
청붕과 허교
장탕반
서얼
전보국
송금

권1 하, 무자년1888∼계사년1893
세자의 소년 시절
노인 난리
최제우의 복주

권2, 갑오년1894∼무술년1898
갑오년1894, 고종 31년
전봉준
아리랑 타령
옥당풍년
중궁의 총명
국한문 혼용
은전과 엽전

을미년1895, 개국 504년
영은문·삼전도비의 훼철
십 년 사이의 세상 변화
전봉준 등 처형
형사법 개정
전주의 약령 설치
한성의 승금 해제
백관의 연봉 제정
관리의 연봉 제정
호열자의 유행
공문서를 국한문으로 하다
개국기원절
광견병
울릉도
인정종·파루종
단발령

병신년1896, 개국 505년
단발령과 의병
비
지방 관원과 연봉
지방 관원의 임기 및 휴가

정유년1897, 건양 2년
원구단
국기 제정

무술년1898, 광무 2년
황성신문 창간
대원군 장례
철도사의 설치
독립협회

권3, 기해년1899∼계묘년1903
기해년1899, 광무 3년
조경단 축조
의학교 설립
양교의 성행과 종현학당의 건립
전차
채회의 금지
명성후의 유혼
발명가

경자년1900, 광무 4년
흑사병의 유행
일본의 흑사병원균 규명
영남 활빈당

신축년1901, 광무 5년
희랍교 전도
안남미 수입
일본인의 식민 계획

계묘년1903, 광무 7년
일본 상인들의 기념잔
양무호
경부선 철도 공사

권4, 갑진년1904∼을사년1905
갑진년1904, 광무 8년
상화가와 매음가
무당 엄금

을사년1905, 광무 9년
정토종
성적도 배포
일본인의 지금고 설치

권5, 병오년1906, 광무 10년
독도
화투의 출현

권6, 정미년1907∼경술년1910
정미년1907, 광무 11년
구미식 혼례

무신년1908, 융희 2년
석전 금지
작잠법

기유년1909, 융희 3년
단군교 창설

경술년1910, 융희 4년
사색의 양반 조사
천조교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작가 소개
  • 작가황현
  • 번역조준호
황현黃玹
황현은 광양현 서석촌현 전라남도 광양군 봉강면 석사리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운경雲卿, 호는 매천梅泉이라 했다. 출신 가계를 보면 장수 황씨로 황희 정승의 후손이기는 하나, 중간에 가세가 영락해서 그의 조부에 이르러서는 상업으로 생활을 영위했다고 한다. 이렇게 축적한 재산을 기반으로 황현은 1천 권의 장서를 갖추고 학문에 전념할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신동으로 소문이 자자했으나, 관력은 불우하여 34세에야 겨우 성균관의 생원이 되는 데 그쳤다. 그는 생원이 된 후, 조선 안팎으로 혼란한 세상을 등지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자신의 거실에 구안옥苟安屋이라 이름을 붙이고 독서와 시작詩作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 서울에 있는 여러 친구가 “다시 서울에 올라와서 구국 운동에 참가하라”라고 권유했으나, 그때마다 “그대들은 어찌 나를 귀신 나라에서 날뛰는 미친 사람들 가운데로 끌어들여 같은 귀신, 미친 사람으로 만들려 하는가” 하고 도리어 엄절히 책망했다.
혼란한 세상에서 그는 비록 은거했으나 망국상을 그대로 보고 있지는 못했다. 지기였던 김택영이 벼슬을 버리고 중국으로 망명한 것처럼 자신도 망국인의 방도를 생각한 듯하지만,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1910년 8월 일본은 소위 한일병합조약이라는 것을 발표해 나라와 민족의 멸망을 공식화했다. 이 소식을 듣고 애절한 절명시를 남기고 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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