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해를 현장에서 몸으로 익히고, 서른 해가 넘도록 강단에서 학생들과 마주했다. 임상병리사라는 직업이 지닌 정체성과 사회적·의료적 소명을 끊임없이 되물었고, 스스로의 일에 자부심을 가진 직업인을 길러내는 일에 최선을 다하였지만 마음 한구석엔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떠나질 않는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을 지켜보던 날, 무언가 거대한 것이 밀려온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때부터 인공지능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고, AI가 진단검사의 판도를 근본부터 바꿀 것임을 예견하고 남이 하지 않는 일을 시작하였다. 다만, 내 배움과 이해의 속도보다 언제나 한 발 앞서 달아나는 AI 앞에서 가끔은 낭패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내가 나은 구석이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지지 않으려는 오기 하나로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대학 강단에서 물러난 지금은, 체외진단기술의 역사를 탐구하는 일에 마음을 쏟고 있다. 과거의 선현들이 남긴 지혜와 흔적을 더듬으며, 여전히 배움의 끝을 놓지 못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