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도시를 바라보면서 몇 가지 원초적 질문에 마주하게 된다. 그 첫 번째 질문은, 좋은 도시는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일까? 아니면, 사람이 발명한 것일까?
오래된 도시들, 여러 대륙에 존재하는 도시들을 보면서, 우리는 도시란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라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도시에는 자연상태 동물의 삶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독특한 것이 있다. 사람의 도시에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고 함께 누리는 공적자산이 있다.
예를 들어, 오늘날 파키스탄에 있는 고대도시 모헨조다로를 보면, 교통을 위한 길과 하수시스템이 배수로가 잘 만들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배수로는 도시전체를 관통하면서 각 주택들과 연결되어 더러워진 물을 흘려보낼 수 있게 만듦으로써, 시민들의 질병을 예방하고 도시의 청결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시설이다. 이러한 배수로는 개인 또는 한 가정이 사용하기 위하여 개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도시 차원에서 계획되고 만들어졌다. 무리를 지어 사는 동물들의 삶에서 이러한 공동의 시설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배수로와 같은 공공시설은 개인을 넘어서는 공동체적 행위이자, 자연상태의 동물적인 행위가 아닌 이성에 바탕을 한 인위적 행위다.
나아가, 오늘날에도 선진국의 좋은 도시와 개발도상국의 낙후된 국토도시를 비교해 보면, 공동체의 공적자산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같은 호모 사피엔스라 할지라도 어떤 국토도시는 공적자산을 잘 구축함으로써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그 풍요와 행복을 누리는 반면, 어떤 국토도시는 공적자산을 만들어내지 못하여 열악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즉, 좋은 국토도시는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발명하는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은, 하나의 도시에 선한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면 그 도시는 저절로 좋은 터전이 되기에 충분할까? 아니면, 개인적인 선함만으로는 부족하고 더 필요한 것이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좋은 국토도시는 매우 인간적인 행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적’이라는 말의 동의어는, 우리나라에서 오늘날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뜻과 정반대로, ‘윤리적’ ‘인격적’ ‘이성적’ 이라는 말이다. 즉, 인간적이라는 말은 비인간적인 것의 반대말인데 비인간적이다라는 말은 ‘동물적’이라는 의미다.
동물도 좋은 심성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동료가 아프면 같이 아파하거나 도와주려는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효과는 잘해야 근거리에서 동시적이며 소규모에 한정될 수 밖에 없다.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서 같이 기쁨과 슬픔을 나누거나, 만지거나 소리를 내어 소통을 할 뿐이다. 사람은, 특히 글을 통하여, 멀리 있는 사람이나 수천 년을 넘어서는 사람과도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나아가 수천수만 명의 사람들과도 생각과 느낌을 소통할 수 있다.
선한 사람들이 모여 산다고 해서 저절로 좋은 도시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옛날 우리나라 조선시대 농촌사회처럼 약 백가구 정도가 대대손손 수백년 동안 같은 터전에서 동일한 농사를 지으면 살아가는 경우에는 선한사람들이라는 조건만으로 충분히 좋은 마을을 이루며 살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이 서로 다른 성격과 선호를 가진 수십수백만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국토도시가 좋은 터전이 되기 위해서는, 과거 조선시대 소규모 농경사회 시대의 생각만으로는 부족하다. 오늘날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