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제국이 가장 강성했을 때, 그 제국의 황제가 학자 수십 명을 불러 모아 한 가지 명령을 내렸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그것을 책으로 적어 남기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1777년, 청나라 건륭제의 손끝에서 『만주원류고』라는 스무 권의 책이 시작되었다.
나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그저 오래된 책 한 권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던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학교에서 나는 청나라를 북방의 오랑캐로 배웠다. 그런데 그 오랑캐의 황제가, 한족 1억을 발밑에 두고 천하의 주인이 된 바로 그 순간에, 자기 뿌리를 한반도 쪽 옛 종족들에게서 찾고 있었다는 사실은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 한 줄의 어긋남이 나를 오래 붙잡았다.
이 책은 그 어긋남을 따라가는 기록이다. 다만 한 가지 약속을 먼저 하고 싶다. 나는 흥분하지 않으려 한다. 인터넷 곳곳에는 만주원류고를 두고 "대륙이 본래 우리 땅이었다"는 환호와 "중국 동북공정의 거짓 족보일 뿐"이라는 경고가 거칠게 부딪힌다. 두 목소리 모두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은 채 외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닮았다. 나는 그 사이에 서서, 건륭제의 학자들이 실제로 무엇을 적었고 무엇을 일부러 적지 않았는지를 한 장씩 펼쳐 보려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이 모든 한반도 역사를 끌어안지 않았다는 점이다. 부여와 신라, 백제는 자기 계통으로 품으면서도, 정작 고구려와 고조선은 슬그머니 밀어냈다. 가장 강력했을 종족을 왜 제 족보에서 지웠을까. 이 침묵 속에 권력이 자기 기원을 어떻게 설계하는지에 대한 진짜 이야기가 숨어 있다. 자, 천 년 전 한 사람이 만주로 건너가던 그 길목에서부터, 차분히 함께 걸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