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1844~1900)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문헌학자, 시인이다. 신은 죽었다, 위버멘쉬(초인), 영원회귀, 힘에의 의지 등 급진적인 사상으로 서양 철학사에 거대한 전환점을 만든 인물이다. 마르크스, 프로이트와 함께 의심의 세 대가로 불리며, 생철학과 실존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1844년 프로이센 작센 지방 뢰켄에서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다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여성들만 있는 가정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두통과 심한 근시에 시달렸으며, 피아노와 작곡에 재능을 보였다. 명문 기숙학교 슐포르타에서 엄격한 고전 교육을 받은 후, 본 대학과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고전문헌학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고 깊이 심취했으며,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와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다.
1869년, 24세의 나이로 박사학위도 없이 스위스 바젤 대학 고전문헌학 교수로 임명되었다. 최연소 교수라는 파격적인 발탁이었다. 1872년 첫 저서 《비극의 탄생》을 출간하여 그리스 비극에 대한 독창적 해석을 선보였으나, 학계의 격렬한 비판을 받았다. 이후 바그너와의 관계도 결별로 끝났다. 1879년 건강 악화로 교수직을 사임하고, 이후 10년간 유럽 각지를 떠돌며 집필에만 전념했다.
방랑의 시기에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아침놀》, 《즐거운 학문》,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등 주요 저작을 완성했다. 특히 《차라투스트라》는 시적 산문으로 자신의 철학을 집약한 대표작이다. 1888년에는 《우상의 황혼》, 《안티크리스트》, 《이 사람을 보라》 등을 집필하며 놀라운 생산성을 보였다.
1889년 1월, 토리노에서 정신 붕괴를 일으킨 후 11년간 침묵 속에서 살다 1900년 바이마르에서 55세로 생을 마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사상은 정신을 잃은 후에야 유럽을 석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