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은 작품만 보러 미술관에 들어간다고 생각하지만, 몸은 작품보다 먼저 공간을 만난다. 입구의 밝기, 벽의 방향, 조명의 높이, 캡션의 위치, 쉬는 의자의 거리까지 전시장은 조용히 관객의 시선과 발걸음을 조정한다.
이 책은 미술관을 감상 공간이 아니라 관객을 움직이는 설계의 장치로 읽는다. 입구가 만드는 첫 문법, 가벽이 바꾸는 감상 순서, 조도가 분배하는 체류 시간, 중심 작품과 주변 작품의 서열, 캡션과 시선의 교차, 사진 촬영과 디지털 안내가 만들어 내는 새로운 우회로까지 전시 경험의 숨은 구조를 다룬다.
작품 앞에서 무엇을 봐야 할지 막막했던 관객, 전시를 기획하거나 공간을 읽고 싶은 독자에게 특히 유용하다. 전시장은 중립적인 배경이 아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다음 미술관에서는 작품보다 먼저 길, 빛, 벽, 사람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