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자 전역錢易, 968∼1026은 자가 희백希白이고 전당錢塘 : 지금의 저장성 항저우 사람으로, 오대십국五代十國 오월吳越의 개국 군주 무숙왕武肅王 전유錢鏐의 손자이자 제4대 충손왕忠遜王 전종錢倧의 아들이다. 오월의 마지막 군주이자 그의 숙부인 충의왕忠懿王 전숙錢俶이 송나라에 귀순할 때 형 전곤錢昆과 함께 송나라로 들어갔다. 전역은 17세에 진사에 응시해 전시殿試에서 세 편의 문장을 반나절 만에 완성했는데, 주고관은 그가 재주는 뛰어나지만 경솔한 것을 싫어해서 낙방시켰다. 하지만 이때부터 전역은 문재文才로 이름이 알려졌다. 진종眞宗 함평咸平 2년999에 진사에 급제해 호주단련추관濠州團練推官에 보임되었다. 얼마 후 입조해 시중서사인試中書舍人에 제수되었다가 광록시승光祿寺丞·통판기주通判蘄州로 전임되었다. 경덕景德 3년1006에 현량방정과賢良方正科에 급제해 비서승秘書丞·통판신주通判信州에 제수되었다. 대중상부大中祥符 연간1008∼1016에 진종이 동쪽 태산泰山에서 봉선封禪할 때 《수상록殊祥錄》을 지어 바쳤으며, 서쪽 분음汾陰에서 제사 지내고 박주亳州로 행차할 때 칙명을 받아 《거가소과도경車駕所過圖經》을 수찬하고 《송아宋雅》를 지어 바쳐, 태상박사太常博士·탁지원외랑度支員外郞·직집현원直集賢院·지개봉현知開封縣·상서사부원외랑尙書祠部員外郞을 역임했다. 그 후로 여러 벼슬을 거쳐 좌사낭중左司郞中으로 승진하고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되었는데, 연일 숙직을 서다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인종仁宗 천성天聖 4년1026에 59세로 세상을 떠났다.
전역은 민첩한 재사才思가 출중해 수백수천 언을 곧바로 지었다. 그의 시문은 처음에는 만당晩唐과 오대의 문풍을 본받았지만, 나중에는 변화를 추구해 북송 초 서곤체西崑體의 선구가 되었다. 일찍이 《금규집金閨集》 60권, 《영주집瀛州集》 50권, 《서원집西垣集》 30권, 《내제집內制集》 20권, 《청운총록靑雲總錄》 100권, 《동미지洞微志》 10권, 《남부신서》 10권을 지었는데, 지금은 《남부신서》만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