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서 킹이 평생 품었던 질문
- 공격적인 동시에 온건한 ‘사회운동’은 가능한가?
-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두 체제의 장점만을 결합한 ‘비전’은 가능한가?
우리가 익히 아는 평화주의자라는 아이콘 이면에는, 위와 같이 모순되어 보이는 가치들을 결합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뇌한 ‘급진적 사상가’이자 ‘냉철한 전략가’로서의 마틴 루서 킹이 존재했다. 이 질문들은 인종차별과 빈곤, 전쟁이라는 거대한 악에 맞서 투쟁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킹은 미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흑인 민권운동가로,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존경받는 흑인 지도자로 기억되고 있다. “저는 꿈을 꿉니다I have a dream” 연설을 비롯해, 백인을 향한 증오가 아니라 연대와 사랑을 주장하며 펼친 비폭력저항, 시민불복종이 잘 알려져 있다.
미국 내 흑인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전 생애를 바쳐 1957년 민권법과 1964년 민권법, 1965년 선거권법 제정에 큰 힘을 보탰다. 스물여섯인 젊은 나이에 이미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을 이끌었고, SCLC남부기독교지도자회의를 이끌며 워싱턴, 버밍햄, 셀마 등에서의 행진을 주도했다.
이 책은 마틴 루서 킹이 맺은 수많은 관계망을 폭넓게 다루며 1950~1960년대 민권운동의 배경과 고름 가득한 미국 정치를 보여 주는 한편, 생애 곳곳에서 마주하게 된 그의 질문들과 내면세계를 함께 들여다보게 한다.
1. 킹의 유년 시절
짐크로법이라는 야만의 세계
이 전기는 20세기 초 미국 흑인이 일상적으로 겪어야 했던 차별과 억압의 역사, 즉 아버지 킹의 어린 시절에서 출발한다. 당시 노예제는 폐지되었지만, 1876년 제정된 짐크로법인종차별법에 따라 학교, 기차, 식당, 심지어 화장실과 묘지에서까지 흑백 분리가 강제되었다. 사적인 공간인 자기 집에서조차 흑인은 백인과 체커나 도미노 게임을 함께 할 수 없었고, 백인 경찰과 정부, KKK단은 린치라는 폭력적 수단으로 두려움을 조장했다.
이러한 일상적 차별과 폭력은 흑인들에게 물질적, 심리적 취약성을 강요했다. 킹의 아버지 역시 어린 시절 당한 폭력의 트라우마로 가정에서 강압적으로 돌변하며 자녀들에게 정서적 문제를 안겼다. 그럼에도 킹이 올곧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고통받는 흑인 역사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양쪽 할머니와 어머니, 흑인 기독교 사회의 헌신적인 보살핌 덕분이었다.
2. 킹의 지적 열정
소로에서 마르크스, 다윈에서 브라이트먼까지
1944년 모어하우스칼리지에 조기입학한 킹은 사회학을 전공하며 인종 정의를 향한 길을 모색했다. 그는 교수진을 통해 비판적 사고를 훈련받으며,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불복종』1849을 접했고, 해로운 체제를 거부하는 비폭력저항 이론을 흡수했다.
1948년 진학한 크로저신학교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다루며 ‘근대적 사고’ ‘시대정신’을 읽는 눈94쪽을 키웠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루소, 홉스, 벤담, 밀, 니체 등104쪽의 사상을 섭렵한 그는, 자본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빈부격차와 불공정에 대한 의구심을 날카롭게 다듬어 갔다.
나아가 1951년 보스턴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여, 인간성은 곧 ‘자유와 책임’을 의미한다는 에드거 브라이트먼의 ‘인격주의’ 철학116쪽에도 깊은 영향을 받는다. 청년 시절 서재와 강의실에서 흡수한 소로를 비롯한 간디, 틸리히, 니부어, 마르크스 등의 사상은 훗날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을 시작으로 미국 전역을 뒤흔든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