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지도 위의 바다 괴물은 화가의 장난이 아니었다. 배를 감는 바다뱀과 사람의 얼굴을 한 인어, 섬으로 오해된 거대한 고래는 사람들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갖고 싶어 했는지를 보여 주는 문화의 문장이었다. 이 책은 지도 가장자리에서 태어난 괴물을 따라 인간이 미지의 바다를 해석해 온 방식을 읽는다.
고대의 신화와 제한된 관찰이 만나는 지점, 중세의 마파 문디와 필사본 동물, 항구 술집과 선창을 오간 목격담, 향신료와 비단이 이동하던 무역로를 차례로 살핀다. 북해의 차르타 마리나에 그려진 고래와 오르카, 바다뱀이 어떻게 복제되어 유럽의 상상력을 바꾸었는지, 인어와 세이렌이 유혹과 경고의 상징에서 상품 이미지로 변해 간 과정도 흥미롭게 펼쳐진다.
괴물은 제국의 지도에서 낯선 세계를 위험하게 이름 붙이는 정치적 장치가 되기도 했다. 측량과 항로가 정교해지며 지도에서 사라진 뒤에도 크라켄과 리바이어던, 심해 생물과 재난 서사 속에서 끊임없이 돌아왔다. 과거의 그림을 틀린 지식으로 비웃는 대신 공포, 욕망, 권력, 상상력이 한 장의 지도에 어떻게 겹치는지 알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은 바다와 인간을 함께 읽는 매혹적인 문화사다.
괴물의 몸은 시대마다 달라지지만 역할은 이어진다. 어떤 때는 항해 위험을 알리고, 어떤 때는 낯선 사람과 땅을 타자로 만들며, 또 어떤 때는 새로운 상품과 이야기의 매력을 키운다. 그 변화 속에서 지도와 권력의 관계가 선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