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기성세대와는 다르게 활력이 넘치고 트렌드에 민감한 40대, 혹은 스스로 젊다고 착각하면서 꼰대짓을 일삼는 40대를 지칭하는 ‘영포티’는 멸칭일까, 아닐까? 공공장소에서 ‘매미’처럼 시끄럽게 떠드는 어르신을 가리키는 ‘할매미’는? 귀엽고 재미있는 어린이를 일컫는 ‘잼민이’는? 한 번이라도 입 밖으로 불러 보았거나 머릿속으로 떠올린 적이 있다면 당신은 대한민국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나이 전쟁’에 참전 중인 셈이다.
‘틀딱충, 연금충, 개저씨, 김여사, 급식충, 초글링’ 등 한국 사회는 나이 멸칭 문화에 점령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년, 중년, 청년, 어린이 및 청소년 등 전 연령과 세대를 지칭하는 나이 멸칭이 존재하고 이를 통해 서로가 서로에 대해 조롱과 경멸을 주고받는다. 여러 연령대 중에서도 특히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자인 아동과 노인에게 쉽게 비하와 경멸의 화살이 향한다. 이는 우리가 지독한 연령차별주의Ageism 사회를 살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나이는 사람을 판단하는 가장 쉽고 유용한 기준이다. 그래서 사람을 분류하고 평가하는 데 흔히 사용되지만 때로 해악, 불이익, 부당함을 초래하고 세대 간 결속을 약화시키기도 한다. 즉 상대의 나이가 ‘많아서, 적어서, 혹은 같아서’ 편견을 갖고 차별하는 행위가 ‘연령차별주의’다. 이것이 심각한 이유는 사회가 연령을 기준으로 개인의 능력과 태도를 판단하여 기회와 자원을 배제시키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갖기 때문이다. 그 결과 특정 연령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물론이고 그들에게 불리한 법 제도, 시스템, 규정 등이 만들어질 수 있다. 또 연령차별은 인종차별이나 성차별과 달리 피해 당사자들이 차별에 문제의식을 느끼거나 저항하지 않는다. ‘나이는 누구나 먹는 것’이라는 평등의 논리에 가려져 그 위험성이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는 모두를 차별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로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어쩌다 연령차별주의 사회가 되었으며, ‘나이 전쟁’을 종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작 《아시아인이라는 이유》 《한 번은 불러보았다》 《차별의 나라에서 행복한 사람들》을 통해 인종, 국적, 지역, 성별, 장애, 빈부, 소수자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차별과 혐오 문제를 꾸준히 다뤄 온 정회옥 교수는 이번에 ‘나이’로 화두를 넓혔다. 그의 신작 《나이 묻는 사회》는 세대별 나이 멸칭의 종류와 유래, 의미와 부작용을 살펴보고 정치, 사회, 대중문화, 일상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연령차별주의의 사례를 소개한다. 이런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한국형 연령차별주의가 발생하게 된 역사적·문화적 배경과 그 특징을 분석하고 궁극적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개인적, 사회적, 제도적 방안을 모색한다.
한국은 처음 만나면 서로의 나이를 묻는 게 일상적인 ‘나이 묻는 사회’다. 관계를 시작할 때 나이를 먼저 확인해야 마음이 놓이는 문화를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이를 기준으로 관계를 정립하는 데 익숙하지만, 나이를 잠시 내려놓고 한 사람을 온전히 마주하는 일에는 서툴다. 문화평론가 이라영의 추천처럼 “나이가 단지 숫자에 불과한 것도 아니지만, 나이가 한 사람의 모든 정체성을 잠식하는 것도 반대”하고 경계해야 한다. 연령대 간 유대와 연대를 방해하고 단절과 반목을 조장하는 나이는 기꺼이 ‘묻어 버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