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장군의 이름은 선명하게 남았지만, 나라의 하루를 실제로 움직인 많은 사람은 노비, 포로, 이주민, 궁녀라는 분류로만 기록되었다. 이름이 없다고 삶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궁궐의 밥상과 전쟁 뒤의 폐허, 논밭과 피난길은 그들의 손과 몸을 통과했다.
이 책은 노비안, 재산문서, 소송기록, 전쟁보고, 쇄환 협상, 궁중 기록처럼 권력의 언어로 작성된 자료에서 낮은 사람들의 흔적을 읽는다. 도망과 이동, 가족과 노동, 법과 처벌, 물건과 문서가 남긴 증언을 따라가며, 기록의 침묵을 상상으로 메우거나 인물을 영웅으로 꾸미지 않는 역사 읽기의 윤리도 함께 제시한다.
큰 사건의 뒤편을 장식처럼 소비하는 대신 제도가 한 사람의 하루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묻는 책이다. 조선의 신분과 궁중, 전쟁과 이주를 미시사와 생활사의 눈으로 다시 보고 싶은 독자에게 역사의 중심을 새로 정하는 독서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