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가장 비범한 데뷔작이자,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 SF 문학에 큰 충격과 영향을 준 걸작 SF 장편소설 《학살기관虐殺器官》이 문학수첩에서 다시 출간된다. 34세에 요절한 젊은 작가가 남긴 문학적 재능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2010년 국내에 처음 소개됐지만 오랫동안 절판된 채 SF 독자들 사이에서 중고책이 고가로 거래되어 왔다. 그리고 마침내 복간에 대한 염원 끝에 2026년 여름의 시작과 함께 독자들 앞에 다시 찾아온다. 이번에 재출간되는 책은 2010년 출간작의 번역자가 오역을 바로잡고 등장인물들의 말투에 개성을 부여하여 더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세심하게 수정했다.
인간 존재에 대한 과학적/철학적 고민,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대한 참신한 설정과 정밀한 묘사, 디테일하면서도 박진감 넘치는 전투 장면 등 SF 팬들과 밀리터리 팬들이 열광할 요소를 모두 갖춘 이 작품은 몇몇 나라에 의한 시대착오적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 상황에도 단연 시의성을 갖는다.
‘학살의 문법’이 세상을 해체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지옥의 존재가 드러난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유전자에 새겨진 학살의 심층 문법이란?
근미래, 핵폭탄으로 도시 하나가 사라진 이래 선진국들은 강박적인 보안 절차와 생체인증 제도를 실시하고, 테러가 사라진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유를 대가로 안전을 보장받는다고 여긴다. 반면 낙후된 비영어권 국가와 개발도상국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대규모 내전과 학살이 빈발하기 시작한다. 그런 학살 현장의 배후에서 늘 발견되는 수수께끼의 미국인, 존 폴. 펜타곤은 미 정보군 특수검색군 소속 클래비스 셰퍼드 대위의 팀에 존 폴의 추적을 지시한다.
어린 소녀와 소년의 비참한 사체, 구덩이 속에서 타 죽은 사람들을 무감하게 바라보는 주인공의 시선으로 시작되는 작품 속에서 추적의 궤적은 학살이 자행되는 세계 곳곳의 비영어권 나라들로 이어진다. 클래비스의 팀은 존 폴의 그림자를 좇아 학살 현장으로 향하지만, 비행기 티켓은 물론 피자 한 판을 구입하는 데도 철저한 개인인증이 필수인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그자를 놓치고 만다. 클래비스는 결국 존 폴의 행적이 마지막으로 확인된 체코 프라하로 날아가 신분을 위장한 채 존 폴의 전 연인인 루치아에게 접근한다. 그러던 중 체코 지하 세력에게 납치된 클래비스는 마침내 존 폴과 대면하고, 그자가 국가의 지원으로 CIA 기밀문서나 크메르루주의 통신 기록, 르완다 내전 당시의 라디오 방송 등을 열람해 ‘어떤 언어’를 연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거기서 뭘 찾았는데?”
“학살에는 문법이 있다는 것.”217쪽
존 폴에 따르면 “어느 나라든, 정치 상황이 어떻든, 어떤 구조의 언어든 간에 학살에 공통되는 심층적인 문법이 존재”하고, “학살이 일어나기 얼마 전부터 신문 기사에서, 라디오나 텔레비전 방송에서, 출판되는 소설에서 그 패턴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는 것이상 217쪽. 그렇다면 존 폴이 낙후된 나라들을 돌아다니면서 그 문법을 이용해 학살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클래비스의 시선을 따라 존 폴을 좇던 독자들은 마침내 충격적인 진실을 맞닥뜨리게 된다.
“시체 위에 이루어진 우리의 세계”를 그려낸 탄탄한 사변思辨
‘철학’과 ‘밀리터리 SF’의 완벽한 결합, 인문학적 사유를 촉발한 신개념 SF의 시작
“2001년 어느 아침, 항공기가 뉴욕에 우뚝 선 높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