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두법융 牛頭法融, 594~657
중국 당나라 시대의 대선사이자, 선종의 독창적인 가풍을 연 우두선牛頭禪의 개창자이다.
본래 윤주潤州 연릉延陵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유학과 사서를 두루 섭렵하였고 이후 불법에 귀의하여 《대반야경》과 삼론학三論學의 교학을 20년간 깊이 참구하였다. 우두산牛頭山 유하사幽栖寺 북쪽 암자에서 홀로 정진할 당시, 그의 고고한 덕화에 감복한 새들이 꽃을 물어다 바쳤다는 ‘백조헌화百鳥獻花’의 일화로 유명하다.
이후 선종의 사조四祖 도신道信대사를 만나 “부처의 마음[佛心]과 자성은 본래 구족되어 있으니 새로이 닦아 얻을 것이 없다”는 직지直指를 받고 확철대오하였다. 깨달음을 얻은 후에는 새들마저 흔적을 찾지 못할 만큼 철저한 무심無心과 대자유의 살림살이를 펼쳤다.
성품과 모양, 선과 교학의 경계를 허문 그의 구경 경계는 고스란히 《심명心銘》에 담겨 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역력한 지혜의 등불로 빛나고 있다.
이후 선종의 제4조 사조 도신四祖 道信 대사를 만나 “백천의 법문이 다 마음으로 돌아가고, 항하사 모래알들만큼의 공덕들이 다 마음의 근원에 있다”는 직지直指를 받고 단박에 언어도단의 조사선을 깨닫고 우두선의 종지를 세웠다.
그의 사상은 대승의 정밀한 교학적 바탕 위에 선가의 성성한 무심無心을 원융하게 녹여낸 것이 특징이다. 깨달음의 활발발한 기틀을 99개의 노래로 읊조린 《심명心銘》을 남겨, 후학들에게 문자를 부수고 실상중도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무상의 지표를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