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월리스의 『코르도바의 심판자들』은 법이 닿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정의를 집행하는 비밀 조직의 이야기다. 20세기 초 런던의 금융가와 스페인 코르도바의 음산한 뒷골목을 배경으로, 이 소설은 권력과 부패, 그리고 그것을 무너뜨리려는 자들의 치열한 싸움을 그린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블랙 대령이 있다. 수많은 투자자를 파멸로 몰아넣으며 막대한 부를 쌓은 그는 런던 시티의 거물들조차 그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만큼 철저하게 자신을 위장한 인물이다. 그의 공범인 에슬리 박사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치명적인 독약을 손에 넣기 위해 코르도바의 기인 카할로스 박사를 찾아간다. 그렇게 조제된 독약은 이야기 내내 보이지 않는 공포로 독자의 목을 죄어온다.
한편 서머스 타운의 말단 순경 프랭크 펠로우는 겉보기엔 평범한 경찰관이지만, 세련된 교양과 천재적인 복싱 실력을 갖춘 수수께끼의 청년이다. 블랙의 위협과 매수에도 굴하지 않고 끈질기게 그의 뒤를 쫓는 그는 사건의 핵심으로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다가간다.
그리고 심판자들이 있다. 스스로 법정이 되어 죄인을 단죄하는 이 조직은 블랙의 요새 같은 보안망을 비웃듯 침입하여 IV라는 인장과 함께 살벌한 경고장을 남긴다. 단 7일의 유예. 그 짧은 시간 속에서 벌어지는 심리전과 추격전이 이 소설의 진짜 심장이다.
1917년에 발표된 고전의 우아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이번 번역본은 인물들의 대사를 현대적인 구어체로 재구성했다. 덕분에 캐릭터 간의 미묘한 긴장과 심리 변화가 한층 선명하고 생생하게 살아난다.
법의 한계를 넘어선 정의는 과연 정의인가. 화려한 가면 뒤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인가.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까지 예측을 허락하지 않는 이 작품은, 고전 추리 소설이 왜 시대를 초월하는지를 다시 한번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