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이 지나도 낡지 않는, 가장 사랑스러운 착각의 기록
잘생기고, 영리하고, 부유하다. 스물한 해를 근심 없이 살아온 엠마 우드하우스는 세상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을 한 몸에 지닌 듯 보인다. 그런 그녀에게 취미가 하나 있으니, 바로 남의 사랑을 제 뜻대로 엮는 중매다. 출신을 알 수 없는 순진한 소녀 해리엇을 손아귀에 넣은 엠마는, 성실한 농부의 청혼을 물리치게 하고 목사와 짝지어 주려 한다. 그러나 그녀가 확신에 차 짜 놓은 이야기는 번번이 사실 앞에서 무너진다. 목사가 사모한 것은 해리엇이 아니라 엠마 자신이었고, 심드렁하게 여긴 청년은 다른 여자와 남몰래 약혼한 몸이었으며, 그녀가 끝내 제 마음조차 모른 채 곁에 두었던 그 사람이야말로 사랑하는 이였다.
『엠마』는 잘못 보는 눈에 대한 이야기다. 엠마의 죄는 악의가 아니라 상상력이다. 그녀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제가 보고 싶은 이야기로 지어낸다. 그리고 그 착각이 하나씩 벗겨질 때마다, 독자는 엠마와 함께 속고 엠마와 함께 부끄러워진다. 서술자의 목소리와 여주인공의 속마음이 한 문장 안에서 미끄러지듯 섞이는 오스틴 특유의 문체가, 독자를 어느새 엠마의 눈 속으로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우리는 깨닫는다. 어리석었던 것은 엠마만이 아니었음을.
제인 오스틴이 생전에 펴낸 마지막 소설이자, 많은 이가 그 예술의 정점으로 꼽는 작품. 크라운 여관의 무도회, 돈웰 애비의 딸기 따기, 그리고 모든 것이 뒤엎어지는 박스 힐 소풍까지 ― 큰 사건이라곤 없는 작은 마을의 나날 속에서, 오스틴은 인간의 허영과 선의와 어리석음을 낱낱이 비춘다. 저마다 잊을 수 없는 말투를 지닌 인물들, 두 번 읽어야 비로소 보이는 촘촘한 복선, 그리고 오만하던 여주인공이 마침내 겸손을 배우는 성장의 드라마가 여기 있다.
"자기 말고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여주인공을 그려 보겠다"던 오스틴의 장담은 유쾌하게 빗나간다. 우리는 결국, 이 밉살스럽고도 눈부신 엠마를 사랑하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