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나라의 한 관리가 퇴근길에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아내가 성황당 나무 아래에서 손을 모으고 무언가를 빌고 있었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니 이런 축언이었다. 우리 집에 베 백 필이 생기게 해 주십시오. 관리는 어이가 없어 물었다. 어찌 그리 작게 비는가. 이왕이면 만 필이 생기게 해 달라고 빌어야지. 그러자 아내가 답했다. 그리되면 당신은 첩을 들일 것 아닙니까.
한비자 서른한 번째 권에 실린 이 짧은 이야기가 이 책의 출발점이다. 아내는 남편이 잘되기를 바라되, 지나치게 잘되기는 바라지 않았다. 남편의 부와 자신의 행복이 어느 지점부터 어긋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인 부부조차 셈법이 다르다. 한비자가 우리에게 건네고 싶었던 말이 바로 이것이다. 사람은 저마다 제 이익을 향해 움직인다.
이 냉정한 관찰 위에 세워진 것이 한비자의 리더십이다. 그는 신하가 충성스러울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고, 백성이 선량할 것이라 믿지 않았다. 대신 어떤 사람이 와도 조직이 굴러가도록 제도를 설계하라고 했다. 법으로 기준을 세우고, 술로 사람을 살피며, 세로 자리를 지키라는 것이다. 사람의 선의에 기대지 않는 통치, 이것이 이천 년을 살아남은 그의 처방이었다.
이 책이 얼마나 무거운 물건인지는 한 장면이 말해 준다. 유비가 세상을 떠나며 어린 아들 유선을 제갈공명에게 부탁했을 때, 제갈공명이 그 어린 황제에게 권한 책이 바로 한비자였다. 그것도 남몰래 읽으라는 당부와 함께였다. 왜 몰래인가. 겉으로 인의를 내세우는 나라에서, 사람을 의심하고 저울질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드러내 놓고 말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비자는 오랫동안 리더의 은밀한 책이었다. 진시황은 이 책을 읽고 천하를 통일했고, 후대의 제왕들은 겉으로 공자를 말하면서 속으로 한비자를 읽었다. 오늘날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조직을 이끌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부딪히는 질문들, 곧 저 사람을 믿어도 되는가, 이 잘못을 덮어야 하는가 물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이 안에 있다.
다만 이 책을 쓰면서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지난 강의에서 논어를 다루었을 때, 한 청중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교수님 말씀을 듣고 우리는 논어를 비웃었습니다. 그 말에 속이 아팠다. 나는 논어를 전하는 사람이지, 논어가 옳다고 전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비자를 다룰 날을 기다렸다. 두 사람을 나란히 놓고 보아야 비로소 균형이 잡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리 밝혀 둔다. 이 책은 한비자를 전하되 한비자를 절대화하지 않는다. 사람을 믿어서 성공한 리더도 있고 믿어서 망한 리더도 있으며, 의심해서 살아남은 나라도 있고 의심하다 무너진 나라도 있다. 한비자의 법치를 가장 철저히 실행한 진나라가 겨우 십오 년 만에 무너졌다는 사실이 그 증거다. 옳은 쪽은 언제나 절반이다. 그 절반을 가려내는 눈이 리더의 몫이다.
필자는 이십 년 가까이 회사를 경영하며 사람에게 크게 배신당해 보았고, 사람을 믿어 큰 도움을 받아도 보았다. 그 경험을 이 오래된 책에 비추어 보니 비로소 문장들이 살아났다. 이제부터 한비자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가 살았던 시대와 그의 죽음에서 시작해, 인간을 보는 눈을 익히고, 법과 술과 세를 하나씩 짚은 뒤, 리더가 끝내 마주하는 두 가지 딜레마 앞에 함께 서 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