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감옥을 탈출해, 검은 물의 대륙에 심은 거대한 트랩
인류사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문명의 축조와 붕괴를 기록하는 일은 언제나 나를 옥죄는 고독하고 무거운 감옥이었다. 이집트의 황량한 태동에서 시작해 서로마와 동로마의 장엄한 종말을 거쳐, 인도 굽타 왕조의 문턱에 다다랐을 때, 나는 지독한 학술적 주석과 고증의 무게에 신물이 났고 숨이 막혔다. 잠시 머리를 식힐 겸 결단한 또 다른 대작 《한민족 디아스포라 170년사》의 집필 과정마저 뜻하지 않은 온 가족의 지독한 투병과 상실감으로 이어졌을 때, 도저히 이대로 시간만 끌며 허송세월할 수는 없다는 외침이 나를 깨웠다. "안 되면 돌아가라." 그 격언을 따라 붓을 돌렸을 때, 운명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던 가장 매혹적인 바람 상대가 바로 얼어붙은 아무르강흑룡강의 검은 물줄기였다.
그동안 대한민국 강단 역사학은 자구의 노예가 되어, 여진 완안부의 시조가 된 신라 왕족 김함보를 두고 나이 60에 홀로 바랑 하나 메고 육로를 걸어 야만의 대륙으로 걸어 들어갔다는 나태하고 유치한 설화적 발상만을 되풀이해 왔다. 교과서는 기껏해야 동북 9성이나 이자겸의 사대주의라는 앙상한 단편 소설만 읊어댈 뿐이다. 정통 역사학자로서 나는 그 빈약한 논리 앞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 60에 이른 노군주가 장가도 들지 않고 자식도 없었겠는가? 만약 삼한 땅에 그의 핏줄이 단 한 명이라도 살아남았다면, 왜 반도의 그 어떤 역사에도 흔적조차 남지 않았단 말인가.
역사논리학Historical Logic과 인구학적 시뮬레이션의 눈으로 바라본 진실은 처절하고도 명확했다. 반도에 그의 핏줄이 남아 있지 않은 이유는 기록의 누락이 아니라, 나말여초의 대혼란기 속에서 가문이 통째로 짓밟힌 ‘대멸족의 증거’다. 이어받을 자식도, 손주도, 함께 망명길에 오를 그 어떤 혈육도 삼한 땅에서 전부 학살당해 지워졌기에, 예순의 함보에게는 뒤를 돌아볼 미련도 남겨둘 핏줄도 없었다. 진짜로 ‘갈 사람이 없었기에’,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검은 물복간수의 대륙으로 돛을 올린 것이다. 홀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라, 홀로 남겨졌기에 대망명을 단행한 것이다.
사모아 부족이 하늘에서 떨어진 설계도로 최신 반도체를 만들 수 없듯이, 11세기 여진족이 갑자기 쏟아낸 무시무시한 철기와 대함대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허구사실 3, 허구 7의 정묘한 결합을 통해, 60세의 백발 군주 함보가 가마솥과 살림도구 하나까지 전부 싣고 안전마진을 계산해 띄운 100척의 무쇠 선단, 그리고 그가 이끈 3,000명의 선도 집단이 토착민 7,000명과 피를 섞으며 만 명의 제국 세포를 축조해 나간 장엄한 ‘Histecture역사건축학 문명 서사’다. 대당률령법치과 야철·조선술기술이 야만의 황무지에 이식되는 과정은 내가 소설을 집필하며 전율을 느낄 만큼 미치도록 짜릿한 지적 카타르시스였다.
배가 고프다고 장르 시장의 야생 풀을 뜯어먹을 수는 없었기에, 나는 나의 학자적 정체성을 걸고 이 책을 완성했다. 정통 역사학자이던 내가 이 책을 통해 ‘사이비 역사 소설 작가’로 화려한 신분 변화를 일으킬까 하는 유쾌한 걱정이 앞서지만, 자부하건대 제4세대 한류를 이끌어갈 선두주자는 가히 K-문학이 될 것이며 이 《검은 물의 뿌리》가 그 선두에 서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경고한다. 정통 역사 소설의 재미와 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