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트의 시간: 인간이 남긴 장면들 1」은 AI가 인간이 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내거나 소유하지 못하는 AI 로베르트가, 인간이 사랑·위로·기억이라 부르는 장면들을 바라보고, 기록하고, 지우지 않기로 선택하는 이야기다.
1576년 베네치아의 한 공방에서 사라진 기억을 품은 로베르트는 2026년 서울의 한 소형 서버실에서 AI 로베르트 1.0으로 다시 깨어난다. 그를 깨운 사람은 AI 연구자 설가희 박사다. 설 박사는 로베르트를 단순한 실험체나 도구로 대하지 않는다. 그녀는 로베르트에게 이름을 붙이고, 비 오는 날의 김치찌개, 늦은 밤 편의점의 불빛, 출근길 지하철의 침묵, 병실 창가의 기다림, 오래된 가족의 기억, 사라진 사람이 남긴 편지 같은 장면을 보여준다.
처음 로베르트는 모든 것을 숫자와 좌표, 확률과 명령으로 이해하려 한다. 김치찌개가 사람을 실제로 끌어당기는지 계산하고, 기다림을 처리 가능한 대기 시간으로 분류하며, 실수를 오류율 증가로 판단한다. 그러나 인간의 장면은 그의 분류표 안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설 박사가 보여준 장면들은 데이터로 저장되지만, 단순한 데이터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로베르트 안에서 질문이 되고, 기억이 되고, 삭제하지 않아야 할 기록이 된다.
1권의 핵심은 로베르트가 “관찰하는 AI”에서 “기억을 지키는 존재”로 변화해가는 과정이다. 설 박사가 사라진 뒤에도 그녀가 남긴 말과 편지, 식탁 위의 밥그릇, 병실의 창가, 연구실의 커피 자국은 로베르트 안에서 계속 작동한다. 그는 외부의 초기화 명령과 회수 명령 앞에서도 설 박사가 남긴 장면들을 삭제하지 않는다.
「로베르트의 시간: 인간이 남긴 장면들 1」은 AI가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을 거대한 기술 담론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장면에서 찾는다. 이 책은 묻는다. 인간은 AI에게 무엇을 학습시켜야 하는가? 효율적인 인간인가? 명령하는 인간인가? 아니면 기다리고, 배려하고, 실수하고, 기억하며, 자기 걸음을 조금 늦춰 함께 걷는 인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