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마트에 들렀던 어느 저녁이었다. 카트에 담긴 물건들을 계산대에 올려놓고 습관처럼 지갑을 꺼내려는데, 앞에 놓인 것은 사람이 아니라 화면이었다. 셀프계산대. 바코드를 하나씩 찍고, 봉투를 스스로 챙기고, 카드를 직접 꽂고, 영수증까지 손수 뜯어야 했다. 별다른 불편함은 없었다. 오히려 줄을 서지 않아도 되니 편리하다고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계산을 마치고 돌아서는 순간, 이상한 질문 하나가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지금 손님으로서 온 것일까, 아니면 이 매장의 임시 직원으로 잠깐 일을 하고 나온 것일까.
그날 이후로 비슷한 장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은행 창구 대신 화면 앞에서 혼자 번호를 누르고, 항공권을 예약할 때는 좌석 선택부터 수하물 무게 확인까지 모든 절차를 스스로 처리하고, 온라인 쇼핑을 할 때는 배송지 입력부터 옵션 선택, 결제 수단 등록까지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끝냈다. 예전 같으면 누군가 돈을 받고 대신 해주던 일들이었다. 지금은 그 일들이 조용히, 아무런 설명도 없이 소비자의 몫으로 넘어와 있었다.
더 이상한 것은 이 모든 과정에서 그 누구도 나에게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나는 그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돈을 낸다. 일을 하면서 돈을 내는 이상한 구조. 이것을 편리함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아니면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할까.
이 책은 그 사소한 의문에서 출발했다. 필자는 경제학자도, 소비자 운동가도 아니다. 그저 매일 지갑을 열고, 카드를 긁고, 화면을 두드리며 살아가는 평범한 소비자일 뿐이다. 하지만 평범하기에 오히려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마트의 진열대가 왜 그렇게 배치되어 있는지, 왜 9,900원이 만 원보다 훨씬 싸게 느껴지는지, 왜 같은 비행기의 같은 좌석인데 가격이 매번 다른지. 이런 질문들은 사소해 보이지만, 그 답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훨씬 크고 정교한 구조와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은 그 구조를 고발하려는 책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순간들을 다시 한번 천천히 들여다보자는 제안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그리고 왜 이렇게 많은 일을 대신하게 되었을까.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에,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