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정확히 알아보는 문장이 삶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불안의 서』의 파편은 고독과 무기력, 꿈과 자기혐오를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붙잡지만, 감정에 이름이 붙었다는 사실과 현실의 조건을 이해했다는 사실은 다를 수 있다. 『불안을 기록하는 법』은 페소아의 아름다운 문장을 감상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자기해석이 이해가 되는 순간과 삶을 대신하는 방어가 되는 순간을 구별한다.
유고 더미에서 편집자가 한 권의 경계를 세운 과정, 베르나르두 소아르스라는 반쯤 허구인 화자, 사무실 장부와 리스본 거리, 떠나지 않고 수많은 삶을 사는 꿈의 구조를 차례로 해설한다. 페소아의 이명 체계와 판본마다 달라지는 순서, ‘불안’과 ‘책’이라는 번역어가 작품의 첫인상을 바꾸는 방식도 짚는다.
후반부에는 반추와 기록을 구분하는 실천적 독서법을 제안한다. 감정의 복사본을 반복하지 않고 몸·시간·장소의 사실을 적는 법, ‘왜’의 늪에서 ‘무엇’의 문장으로 이동하는 법, 작은 행동으로 기록을 닫고 필요할 때 도움을 구하는 기준을 다룬다. 문학의 아름다움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현실과 다시 접촉하게 하는 재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