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 예보관이 오늘 아침에도 슈퍼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고 상상해봅니다. 위성 데이터와 기압 배치도를 살피고, 대기의 흐름을 계산해서 내일의 날씨를 예보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 예보관이 어느 날부터 데이터를 보는 대신 창밖을 향해 절을 하기 시작한다면 어떨까요.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청제를 지낸다면, 우리는 그를 여전히 전문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이 책은 그런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특정 진영을 겨냥한 질문이 아닙니다. 좌파든 우파든 중도든,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미국이라는 나라를 두고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입니다. 미국이 이번엔 이렇게 될 거라는 확신에 찬 전망을 듣고, 그 전망이 몇 달 뒤 완전히 빗나가는 모습을 지켜본 경험 말입니다. 1970년대 주한미군 철수를 두고 제2의 6.25가 임박했다던 이야기부터, 리먼 사태 이후 달러 패권의 종말을 선언했던 목소리들, 그리고 최근 반도체법과 관세 전쟁을 둘러싼 숱한 예측들까지, 이 오독의 역사는 반세기 넘게 반복되어 왔습니다.
저는 학자도 아니고 미국 전문가도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직장을 다니며, 뉴스에 나오는 미국 관련 보도를 볼 때마다 왜 이렇게 예측이 자주 틀릴까 하는 궁금증을 놓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그 궁금증을 따라가다 보니, 문제는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미국을 바라보는 방식에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워싱턴 D.C.와 뉴욕, 보스턴이라는 극히 좁은 창을 통해서만 미국을 들여다보고, 그 창에 비친 풍경을 미국 전체의 모습이라 믿어온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이 책은 미국을 옹호하거나 비판하기 위한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감정을 최대한 걷어내고, 지난 반세기 동안 있었던 몇 가지 사실들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해보려는 시도에 가깝습니다. 닉슨 독트린, 플라자 합의, 걸프전, 리먼 사태, 셰일 혁명, 미중 무역전쟁, 반도체 패권 경쟁까지. 이 사건들을 하나씩 짚어가다 보면, 독자 여러분 각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손에 쥐게 되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결론을 내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답할 재료를 최대한 냉정하게 늘어놓아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