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가시는 메뚜기의 신경계를 재작성한다. 감염된 메뚜기는 물을 향해 뛰어들고, 그곳에서 익사한다. 기생충은 숙주의 몸을 뚫고 나와 자유로워지고, 숙주는 죽는다. 그런데 메뚜기는 자신이 조종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알지 못한다. 그 행동을 ‘내 선택’이라고 믿으며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톡소플라스마에 감염된 쥐는 고양이의 냄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끌린다. 쥐는 고양이에게 잡아먹히고, 기생충은 고양이의 장에서 번식한다. 쥐 역시 자신의 행동이 외부에서 주입된 것임을 모른다.
이 모든 것은 과학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인간에게도 이러한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면?
우리가 ‘내 선택’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사실은 누군가가 우리 뇌에 심어놓은 패턴이라면?
우리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결정들—직업, 사랑, 이주, 신념의 전환—이 모두 23년이라는 주기 속에서 반복된다면?
이 소설은 그 물음에서 시작한다.
『숙주』는 신경과학자 이강은이 우연히 발견한 한 편의 미출간 논문을 통해 인간 의식의 근간을 흔드는 진실과 마주하는 이야기다. 그녀는 논문을 쫓아 멕시코의 오악사카 산중 마을로 향하고, 그곳에서 집단적 꿈을 꾸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세 번째 밤, 꿈 너머에 존재하는 ‘듣는 존재’들과 마주한다.
이 소설은 기생충학의 사실들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오래된 철학적 질문을 문학적으로 확장한다. 그러나 결코 허무로 빠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알아채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핵심을 관통한다. 우리의 선택이 외부에서 유도된 것일지라도, 그 사실을 알아채는 순간, 선택은 비로소 우리의 것이 된다. 그리고 알아챈 상태에서도 계속해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인간이 이 세계에 응답하는 가장 강력한 방식이라고 이 소설은 말한다.
침묵으로 응시하는 듯한 절제된 문장, 과학적 상상력과 철학적 사유가 교차하는 구성, 그리고 마지막 장에 이르러 독자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는 질문. 『완결숙주』는 읽는 이로 하여금 한 번쯤은 자신의 선택 너머를 응시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당신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
이것 또한 우연일까, 선택일까.
그리고 그 질문을 던지는 당신은, 이미 무엇인가를 알아챈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