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정체성이 소멸된 순간 시작되는, 인간 본연의 기억과 소통을 향한 구전 서사
본 작품은 스마트폰이 신분증과 기억 저장소를 겸하는 2040년대 초반의 '뉴노멀' 사회를 배경으로, 디지털 기기의 상실이 개인의 정체성과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체하고 재구성하는지 추적하는 문학 소설이다. 대규모 서버 다운 사태로 가상 정체성의 취약함을 목도한 인류 역사 속에서, 400년 전 해양민 문화를 완벽히 고수하며 유일하게 반反디지털 공동체로 남은 이탈리아 리보르노 올드타운의 풍경을 이국적이면서도 생밀하게 그려낸다.
소설은 스마트폰 분실이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사건을 통해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 인물의 심리를 입체적으로 따라간다. 서울에서 온 25세 기술기획자 '수현'은 올드타운 여행 중 스마트폰을 잃어버리며 자신의 사회적 신분과 축적된 데이터, 인간관계망을 한순간에 상실한다. 디지털 미아가 된 수현은 해양민 노인들의 구전 문화인 '바람의 이야기'에 편입되고, 디지털 신호가 아닌 바닷가의 소리와 어부들의 손짓, 전통 조개껍질 암호 같은 육체적 경험을 통해 잃어버렸던 본래의 기억과 자아를 재구성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 기기의 손실이 유발하는 파편화된 관계와 비디지털 공간에서의 인간 본연의 소통 회복이 극적으로 교차한다.
작가는 스마트폰이 삶의 전부가 되어버린 현대 사회에서 기기 단 한 대의 분실이 개인의 세계를 어떻게 붕괴시키는가에 주목하며 기술의 이중성을 성찰한다.
디지털 기록은 유실되고 변형될지언정, 인간의 진정한 기억과 문화는 공유되는 경험과 아날로그적 연대를 통해 온전히 유지될 수 있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청소년에게는 디지털 유대감의 한계를, 성인에게는 기술과의 관계 재정립을 생각하게 만들며 세대를 뛰어넘는 보편적인 감동과 인간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