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이를 표현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 날,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 자체를 모두 잃게 된다면 어떨까? 『청바지가 입고 싶었던 소녀』는 북한에서 태어나 남한에 온 지 십여 년이 된 저자가 담은 지난 감정들의 기록이다.
그곳에서 ‘감정’은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언어가 아니라 생존의 반응이었고, 통제해야 할 대상이었다. ‘도대체 감정이란 무엇일까?’ 문득 낯선 기분에 접어든 저자는 지난날을 되돌아본다. 정해진 복장과 두발 규정에 맞춰 살아가던 때. ‘청바지’와 ‘짧은 치마’는 허용되지 않았다. 동네를 오가는 중국 상인들과 DVD로 몰래 본 남한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이 입은 청바지는 자유의 상징이었다. 입을 수 없는 옷을 매일 상상하던 어린 시절, 남한 사회에 대한 호기심은 커져만 갔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남한. 하지만 그토록 동경했던 청바지는 자유의 상징이 아닌 꽉 조여오는 불안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또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같은 감정 어휘, 다른 의미! 나는 왜 다르게 느끼고 있을까?
자유라는 이름의 낯선 세계 속에서, ‘감정’을 뒤로 한 채 살던 한 개인이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은 누군가에게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상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결코 당연하지 않을 수 있음을 가만히 전한다. 치열한 한 시절을 견뎌온 기억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청바지가 입고 싶었던 소녀』는 삶에 대한 깊이 있고 진지한 물음으로 다가올 것이다.
한 사람이 감정을 잃고,
그 감정을 다시 만나게 되기까지의 기록.
이제는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안아주며 살아가려 합니다.
“‘감정’이라는 단어가 낯설었고, 무슨 뜻일까 궁금했다. 그러면서 그 상황을 다시 기억해 보았다. 하지만 느낌조차도 없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마음에 남겨두되, 삶의 방향은 앞으로 두기로 했다.”
이 책은 지난 삶에 대한 회고에서 시작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삶에 대한 다짐으로 끝난다. 통제에서 자유로, 체제에서 개인으로. 그 모든 순간을 지나온 것은 결국 ‘나’ 자신이었다.
저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쫓기던 과거에서 벗어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미래 지향적 질문을 던진다. 이 과정 속에서 더 이상 지나온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나’ 자신을 존중하고 인정하기로 결심한다.
솔직하고 단단한 언어로 쌓아 올린 이 기록에는 한 시절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한 개인의 용기가 담겨 있다. 선언이 아닌 선택으로, 쫓기는 삶이 아닌 나를 정의하는 삶으로.
청바지가 입고 싶었던 소녀는 마침내 이곳에 서서 말한다.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나는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국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