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을 떠올리면 터널과 유리창, 흰 눈과 붉은 뺨이 먼저 남는다. 아름다운 기억은 틀리지 않다. 다만 한 사람의 얼굴이 완벽한 풍경이 되는 동안, 그 얼굴의 주인은 무엇을 하며 살고 누구를 돌보고 어떤 비용을 치렀는가. 이 책은 작품의 미학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감탄 뒤에 가려진 코마코와 요코의 삶을 다시 불러낸다.
시마무라에게 가까이 붙은 서술의 초점을 따라가며, 보는 사람의 안전지대와 감상 권력을 분석한다. 코마코의 샤미센 연습과 온천 게이샤 노동, 일기와 생계, 떠나는 남자와 남는 여자의 시간 차이를 복원한다. 요코의 맑은 목소리와 돌봄을 신비나 순수의 이미지로만 소유하지 않고, 말해지지 않은 내면을 어디까지 읽을 수 있는지 묻는다.
관능과 순수, 연적과 희생자라는 쉬운 이분법을 넘어 두 여성 사이의 빈칸을 살피고, 화재와 추락의 마지막 장면에서 누가 관객이고 누가 현실을 떠안는지 확인한다. 온천장의 관광과 서비스 노동, 번역된 첫 문장과 노벨문학상의 세계문학 틀까지 이어 가며, 아름다움을 느끼는 권리와 가려진 삶을 볼 책임을 함께 배우게 하는 다시 읽기다.
12개의 장은 시선, 미학, 노동, 사랑, 침묵, 번역, 관광의 층을 차례로 통과한다. 눈 덮인 풍경을 덜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풍경 속에서 보이지 않던 사람까지 함께 볼 수 있도록 독서의 초점을 넓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