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도시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흔히 그 도시가 세워진 순간부터 시작하려 한다. 수원의 경우 그 순간은 너무나 선명하다. 1796년, 정조가 완성한 화성의 웅장한 성벽이 오늘날까지 남아 이 도시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성이 세워지기 훨씬 이전부터, 이 땅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광교산과 칠보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그 사이로 원천천과 수원천이 흘러내리는 이 분지는, 산에서 얻는 목재와 사냥감, 하천에서 얻는 물과 물고기, 그리고 낮은 구릉과 평야가 만들어내는 농경지까지 고루 갖춘 살기 좋은 땅이었다. 수원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바로 이 지리적 조건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