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아 플라스의 죽음을 알고 『벨 자』를 읽는 순간, 에스더의 모든 문장은 예정된 비극의 증거로 바뀌기 쉽다. 이 책은 작가의 생애를 지우지 않으면서도 전기가 소설을 대신하지 못하게 한다. 유리종 아래에서 들려오는 에스더의 목소리를 증상과 예고가 아니라 서술, 농담, 선택의 언어로 다시 듣는다.
뉴욕의 잡지 인턴 생활과 귀향, 병원이라는 세 구간을 따라 경험하는 에스더와 회고하는 에스더의 거리를 살핀다. 무화과나무의 선택 지옥, 결혼과 출산이 진로처럼 제시되는 시대, 도린과 벳시를 비롯한 여성 인물들의 서로 다른 생존법, 몸과 거울의 이미지를 세밀하게 읽는다. 벨 자의 은유를 의학적 진단과 동일시하지 않으며, 냉소와 유머가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는 방식도 놓치지 않는다.
치료 장면에서는 1950년대의 전기경련치료와 오늘의 치료를 구분하고, 신뢰와 설명, 계급과 돌봄의 조건을 함께 본다. 가명 출간, 전기와 일기의 사용 범위, 한국어 번역이 건조한 농담과 성 역할을 옮기는 문제까지 이어진다. 비극적 작가 신화 뒤에 가려진 여성 작가의 탄생과 살아남은 서술자의 목소리를 되찾는 해설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