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사랑했던 사람을 역사적 범죄의 가해자로 판단할 수 있는가. 『책 읽어주는 남자』는 소년기의 친밀함, 전범 재판의 거리, 감옥으로 보내는 녹음테이프를 한 사람의 기억 안에 겹쳐 놓는다. 이 책은 한나의 문맹을 비밀의 반전으로 소비하지 않고, 설명과 면책 사이의 경계를 끝까지 붙든다.
열다섯 살 미하엘과 서른여섯 살 한나의 관계에 존재한 권력 비대칭, 읽어 주기와 씻기의 의식, 설명 없는 이별이 만든 기억의 미화를 먼저 살핀다. 법정에서는 형사적 죄, 정치적 책임, 도덕적 죄책감이 어떻게 어긋나는지 구분하고, 전후 세대가 부모 세대를 심판하면서 동시에 느낀 수치와 거리감을 읽는다. 미하엘이 문맹을 알고도 침묵한 선택과 녹음테이프로 친밀함을 통제한 방식도 피하지 않는다.
읽기와 쓰기가 교양을 줄 수는 있어도 윤리적 변화를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 피해자가 용서와 속죄의 방식에 거부권을 가진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영화가 인물의 얼굴과 결말을 어떻게 바꾸었는지까지 검토하며, 연민이 책임을 흐리지 않고 판단이 인간을 지워 버리지 않는 독법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