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를 독재의 가장 심한 형태나 몇 가지 징후의 목록으로만 이해하면, 한나 아렌트가 던진 질문은 빠르게 납작해진다. 『전체주의의 기원』은 강한 지도자와 선전 기술을 판별하는 진단표가 아니라, 기존 정치 개념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지배 형태가 어떤 역사적 요소 속에서 결정화되었는지를 추적한 책이다.
이 해설서는 반유대주의, 제국주의, 전체주의로 이어지는 세 부분의 구조를 먼저 지도처럼 펼친다. 근대 반유대주의와 오래된 증오의 차이, 국민국가와 유대인의 취약한 지위, 드레퓌스 사건, 팽창을 위한 팽창, 식민지의 인종과 관료제, 난민과 무국적자의 권리 문제를 차례로 연결한다. 계급이 무너진 자리에 등장한 대중, 국가보다 오래 움직이는 운동, 선전과 조직, 비밀경찰과 수용소가 어떻게 하나의 체제를 구성하는지 보여 준다.
마지막에는 이데올로기, 테러, 고립, 고독, 홀로 있음의 차이를 구분하며 나치즘과 스탈린주의를 함께 묶는 비교의 성취와 대가를 검토한다. 판본마다 달라진 결론과 번역의 어긋남, 탈식민주의 비판도 빠뜨리지 않는다. 오늘의 정치에 성급히 이름표를 붙이기 전에 개념의 경계와 역사적 구조를 먼저 살피게 하는 읽기 안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