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메시 서사시』는 불멸의 비밀을 얻는 성공담이 아니다. 성벽을 남긴 강한 왕이 친구의 죽음 앞에서 자기 몸의 끝을 알아차리고, 세계 끝까지 달린 뒤 다시 우루크의 벽돌을 바라보게 되는 변화의 기록이다. 이 책은 그 여정을 우정, 왕권, 폭력, 애도, 홍수, 젊음과 기억의 문제로 나누어 읽는다.
먼저 한 권의 완성본처럼 보이는 서사시가 실제로는 여러 시대와 언어의 점토판 조각에서 복원되었다는 사실부터 살핀다. 수메르어 이야기, 고바빌로니아판, 표준 바빌로니아판, 니네베의 파편과 열두 번째 점토판의 낯선 위치를 짚으며, 대괄호와 공백이 번역에서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한다. 텍스트의 결락을 지우지 않아야 작품의 역사도 함께 보인다는 관점이다.
우루크의 탄원과 엔키두의 탄생, 샴하트가 여는 문명의 경계, 길가메시와 엔키두의 결투와 우정, 삼나무 숲과 훔바바의 죽음, 이슈타르의 청혼과 하늘의 황소를 지나면 이야기는 엔키두의 죽음에서 급격히 방향을 바꾼다. 사자의 가죽을 두른 왕은 마슈산과 죽음의 물을 건너 우트나피쉬팀을 만나고, 홍수 이야기와 잠의 시험, 젊음의 식물, 뱀의 탈취를 거치며 불멸과 젊음이 서로 다른 욕망임을 배운다.
마지막에 남는 것은 영생이 아니라 도시, 기록, 이름과 기억이다. 유명한 모티프를 나열하기보다 장면의 순서가 한 왕의 욕망을 어떻게 바꾸는지, 다른 홍수 전승과 번역의 차이가 무엇을 드러내는지 함께 읽고 싶은 독자에게 맞는 고전 해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