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철학 입문The Concept of Nature
이 책은 이전 저작인 『『자연 인식의 원리들에 관한 탐구An Enquiry concerning the Principles of Natural Knowledge1919』의 자매편으로, 수학적 물리학이 아닌 철학적 관점에서 자연, 시공간, 물질이 무엇인지 논한 책이다. ‘자연’이란 우리가 감각과 지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뜻한다. 이 개념은 마음이 만들어 내는 현상과 그 배후의 원인으로 자연을 인위적으로 쪼개는 이분법적 태도를 거부한다. 대신 사건과 객체라는 두 가지 요소를 통해 시간, 공간, 물질, 측정의 전제를 다시 세우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자연은 감각과 지각 속에서 관찰되며, 사유와는 독립적이고 자기완결적인 성격을 지닌다. 하지만 이를 오해한 결과, 그리스 시대 이후 생겨난 '기체基體, substratum'라는 개념이 결국 ‘물질’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낳았다.
자연은 사유와 구별되지만, 절대 사유 외부의 추상적 실체에 기대지 않는다. 따라서 자연과학은 자연을 외부의 형이상학적 존재와 연결하지 않고, 오직 자연 자체의 조건에서 파악하는 ‘동질적 사유’만을 다뤄야 한다. 이는 자연이 정신이나 형이상학적 영역과 완전히 분리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자연의 구조가 감각적 각지와 사유 작용만으로는 온전히 해명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닫혀 있다는 의미다.
저자는 지시구指示句와 기술구技術句를 구별하여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사실’은 감각 경험에서 미처 분화하지 않은 종착점이며, ‘인자’는 그 사실에서 분화된 요소이고, ‘존재자’는 사유가 순수한 대상으로 포착하는 인자다. 이러한 구별은 소통에는 도움이 되지만, 자연이 지닌 구체적이고 풍부한 성질 중 일부를 추상화 과정에서 놓치게 만든다.
이러한 관점에서 저자는 그리스 이후의 물질론을 비판한다. 물질론은 감각적으로 주어진 인자와 존재자를 분리하고, 존재자를 속성들의 기체인 ‘실체’로 규정하며, 인자는 그 실체에 딸린 속성으로 격하시킨다. 그러나 실제로 공간에서 관계를 맺는 것은 실체가 아니라 장미의 붉음, 꽃의 향기, 소리처럼 우리가 경험하는 속성들이다. 만약 실체를 찾고자 한다면, 이는 오히려 ‘사건’에서 구해야 마땅하다.
물론 물질론이 자연의 지속성, 변화, 운동 같은 중요한 특징을 포착한 점은 인정해야 한다. 다만 문제는, 물질론이 이러한 특성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다 오히려 의심스러운 형이상학과 얽혀버렸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