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과학신학’이란 이름을 짓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1993년이다. 그때는 이런 학문의 방향을 내가 거의 처음 시작했을 거로 생각했다. 물론 서양에서는 이런 학문이 있을 것으로 어렴풋이 짐작은 했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공군 병사들의 복음화를 위해서이다. 젊은 병사들은 과학이 말하는 것을 많이 따를 것인데 나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과학을 좀 알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과학에 관한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그때 크게 충격을 받은 것은 스티븐 호킹이 쓴 『시간의 역사』라는 책이었다. 내가 우주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했는데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우주를 너무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과학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설프지만 ‘과학신학’이란 이름으로 공군 병사를 전도할 작은 책자를 만들었다. 나는 그 내용으로 공군 조종사에게 말하기도 했다. 어떤 조종사는 내가 말하는 것에 무척 흥분하여 화를 내기도 했다. 그 이유는 신이 없이 우연히 시작되었다고 하는 우주의 시작을 나는 하나님이 창조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신학의 말로 하면 조종사들이 볼 때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겠는데 내가 시도한 게 과학의 용어로 하나님의 창조를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무신론의 우주로 머리 구조가 짜여있던 어떤 조종사는 나의 말에 참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조종사는 무신론의 우주는 과학이고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의 창조는 그저 종교의 영역에 머물러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과학의 용어로 말하면 사람들의 머리에 과학과 신학의 충돌이 일어나니까 그것을 하지 말라는 경고와 같았다. 그런데 안 할 수 있나? 기독교인은 하나님이 진짜 우주를 창조했다고 믿는다면 과학의 용어로도 그 사실이 증명되어야 한다. 과학과 신학의 용어가 다르고 체계가 다르다고 하면 그것은 하나의 진리가 아니고 두 개의 진리를 말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둘 중의 하나는 가짜이다. 그렇다면 어떤 게 진짜이고 어떤 게 가짜일까? 사람들은 과학이 진짜이고 신학이 가짜라고 생각한다. 다만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 사람들의 세력을 생각해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태도일 뿐이다.
과학에서는 철저히 문외한이었다. 우연히 서점에서 집어 들게 된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란 책이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다. 1판 49쇄의 책이 인쇄될 때까지도 읽지 않았던 책! 어쩌면 목사의 인생에는 전혀 읽을 필요가 없는 것 같기도 한 천문학에 관한 이야기에 나는 운명처럼 이끌려서 책을 보게 되었다, 책의 내용은 내가 이곳저곳에 의문으로 남아있던 성경의 어떤 맥을 뚫어주는 것 같았다. 대다수 그리스도인은 나와 같은 상태일 거로 생각한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 전공 학과가 아니고는 인생에서 다시 볼 거 같지 않은 물리학과 생물학이 정작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크게 필요한 학문임을 깨달았다.
사실 신학을 공부한 나에게 과학은 늘 사단의 대변자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 천문학에서 우주가 단지 우연에 의한 진화가 아니라 계획design된 구조라고 말하는 과학자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증명이 과학적 용어로 가능하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과학은 하나님이 창조한 우주와 생명체를 연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