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 여덟 시.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미 하루가 무겁다.
월요일은 출근하는 순간이 아니라, 월요일을 생각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이 감각에 이름을 하나밖에 붙이지 못한다. 일하기 싫다는 것이다.
그리고 곧 그 문장을 자기 인격에 대한 판정으로 바꿔 읽는다.
나는 게으른가, 왜 남들은 다 견디는데 나만 이런가.
이 책의 논지는 하나다. 일하기 싫음은 죄가 아니라 정보다.
그 신호는 노동량, 자율성, 관계, 의미, 건강 다섯 가운데 무엇이 무너졌는지를 알려준다.
다섯 항목은 서로 다른 조치를 요구한다. 노동량이 문제인 사람에게 의미를 설명하는 일은
소용이 없고, 관계가 문제인 사람에게 업무를 줄여 주면 외로움만 길어진다.
문제는 우리가 이 다섯 신호를 하나의 이름으로 뭉쳐 부르고, 그래서 처방도
하나만 갖고 있다는 데 있다. 더 부지런해지라는 처방이다.
책은 다섯 부로 나뉜다.
1부는 피로의 형태를 본다. 예고가 노동보다 먼저 도착하는 구조, 끝내도 끝난 것 같지
않은 이유, 그리고 게으름과 소진과 질병이 서로 다른 상태라는 구분이다.
2부는 부끄러움의 출처를 추적한다. 일하기 싫음이 죄가 된 데에는 역사가 있다.
여가가 노동보다 위에 있던 시대가 있었고, 그 순서가 뒤집힌 경위가 있으며,
종교의 언어로 시작된 노동의 도덕이 오늘은 성과의 언어로 작동한다.
3부는 여섯 사람을 지난다. 쇼펜하우어, 카뮈, 시몬 베유, 아렌트, 니체, 프랭클이다.
이들은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이 감정을 대충 넘기지 않는 여섯 개의 도구를 남긴다.
원함이 만족에서 멈추지 않는 이유, 결과가 남지 않는 노동의 구조, 반복이 몸과
사고에 청구하는 비용, 활동의 세 종류, 지금의 하루를 재는 저울, 그리고 의미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경계다.
4부는 오늘의 조건을 숫자로 확인한다. 첫 취업까지 평균 11.2개월, 첫 일자리의
평균 근속 1년 6.8개월, 그만둔 이유 1위는 성격이 아니라 근로여건 불만족 44.4퍼센트.
연간 노동시간 1,859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보다 151시간 길다. 끝이 정의되지
않는 업무, 빨라진 도구가 도로 회수해 가는 시간, 회복되지 않는 휴식이 그 조건이다.
5부는 결정의 순서를 다룬다. 퇴사, 경계 조정, 치료, 역할 변경. 선택지는 넷인데
대부분의 사람이 하나만 검토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반년을 보낸다.
이 책은 약속하지 않는 것이 많다. 조건을 바꿔 주지 않고, 아침에 눈이 번쩍 뜨이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도 않는다. 사표를 권하지도, 버티라고 하지도 않는다.
대신 각 장 끝에 그 장의 논지에 대한 반론을 함께 실었다. 확신을 주는 문장은
오래가지 않고, 오래가지 않는 확신은 다음 주에 다시 자기 비난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오늘도 겨우 버틴 사람, 견디는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한 사람,
그리고 그만두어야 하는지 아직 판단하지 못한 사람을 위한 책이다.
오늘을 겨우 버틴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다.
자기 몫의 하루를 살아낸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