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집행을 앞둔 밤, 데이비드는 거울 앞에서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과 그 사랑을 밀어낸 시간을 복기한다. 결말을 이미 아는 고백은 진실을 향해 곧장 가지 않는다. 기억은 죄책감을 배열하고, 문장은 고백과 변명 사이를 오가며, 화자는 조반니를 설명하는 동안 끊임없이 자신을 숨긴다.
이 책은 『조반니의 방』을 비극적인 동성애 연애 이야기로만 읽지 않는다. 어린 시절 조이와의 사랑 다음 날 찾아온 잔혹함, 아버지가 가르친 남자다움, 파리에서도 벗어나지 못한 미국적 정상성, 술집에서 돈과 몸이 거래되는 권력을 따라간다. 좁은 하녀방의 벽과 어지러운 물건, 조반니가 뜯어 고치려는 공간은 피난처가 감옥으로 변하는 과정을 물질적으로 보여 준다. 헬라가 약속하는 결혼과 귀환, 수와 조반니를 이용해 남성성을 확인하려는 데이비드의 선택도 책임의 문제로 다시 읽는다.
조반니의 가난과 이방인성, 기욤의 착취, 살인과 처형을 낭만화하지 않으면서 인과와 책임을 구분한다. 흑인 작가에게 한 가지 이야기만 요구했던 출판 환경, 백인 화자의 보이지 않는 인종, 게이·동성애·양성애라는 시대별 용어와 번역의 온도도 함께 살핀다. 사랑의 보편성을 말하면서 퀴어한 구체성을 지우지 않는 읽기, 정체성의 이름을 감옥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정치적 현실을 놓치지 않는 읽기를 원하는 독자에게 이 책은 방 밖에 남은 책임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