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는 천재가 된 뒤에야 비로소 한 사람으로 보였는가. 『앨저넌에게 꽃을』은 지능을 얻었다가 잃는 비극으로 기억되지만, 더 날카로운 질문은 수술 전의 찰리가 이미 일하고 배우고 사랑하며 상처받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시작한다. 독자는 틀린 철자를 먼저 알아보며 그를 걱정하는 동시에 은근한 우월감의 자리에 선다.
이 책은 경과 보고서의 철자와 문장 길이, 어휘의 변화가 독자의 위치를 어떻게 뒤집는지 분석한다. 찰리의 배움에 대한 욕망과 사랑받을 자격을 얻고 싶은 상처, 지능검사 숫자가 만든 인간의 등급, 충분한 동의가 어려운 실험, 연구자들이 소유한 성공, 앨저넌이 먼저 보여 준 퇴행의 결말을 따라간다.
지능 상승을 무조건적인 해방으로 보지도, 낮은 지능의 찰리를 순수한 존재로 미화하지도 않는다. 능력은 실제 선택지를 넓히지만 능력의 수준이 존중받을 자격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학교와 직장의 성적표, 생산성과 독립성의 기준이 인간의 가격표가 되는 오늘까지 연결해, 사람을 평가하되 사람의 자리를 취소하지 않는 두 번째 지능을 제안한다.
경과 보고서를 읽는 독자의 윤리도 중요한 축이다. 우리는 찰리의 문장을 친밀한 고백으로 읽지만, 연구자에게 그 문장은 실험 성과를 입증하는 데이터다. 누가 기록을 요구했고 누가 공개를 결정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동의가 정말 동의였는지, 성공한 동안에도 찰리가 사람보다 결과로 취급되지는 않았는지 살핀다. 과학의 실패만 비난하는 쉬운 결론을 넘어 연구가 성공했을 때도 남는 권력과 책임을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