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인 김호수는 1994년 미국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한국을 떠나기 전 그의 어머니로부터 미국 사람 누구라도 저자를 입양해서 친딸처럼 챙겨주면 좋겠다는 말을 듣는다. 터무니없는 말에, 어머니가 살아 있는데 무슨 입양이냐고 되물었지만 돌아온 말은 ‘상관없다, 그렇게들 많이 한다’였다. 어머니는 “나 죽었다고 혀”라며 태연히 바람을 전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무모한 말이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얘기였다는 것을 저자는 미국에 가고 얼마 안 되어 깨닫는다. 그가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한국 고아 출신으로 미국인에게 입양된 지인을 언급했고, 그가 만난 입양인들 또한 ‘가난’ ‘더 나은 삶’ ‘고아’ 같은 단어를 되풀이하며 놀라우리만치 비슷한 입양 서사를 들려줬다. 이런 마주침에서 저자가 느낀 석연치 않은 감정은 곧 구체적인 질문으로 발화된다. 고아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바처럼 실제로 그들 어머니는 모두 사망했을까. 아니라면, 미국에서 누군가가 딸을 보살펴주길 기대하며 죽음 뒤에 숨으려 했던 그의 어머니처럼 다른 어머니들도 살아 있을까. 자기 존재를 지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이 여성들은 누구일까.
해외로 입양 보내진 아동들이 성인이 되어 ‘고국’과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온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들이 상실했던 장소를 성공적으로 되찾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사실상 고국이란 두 팔 벌린 어머니 형상을 취한다는 점에서, 입양인이 돌아오는 곳은 은유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어머니의 품이다. 이처럼 어머니라는 존재는 번번이 전유되고 호출되지만 정작 친생모가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지 캐내려 하면 할수록 ‘어머니의 품’ 같은 말은 부서져 흩어 내린다. 지난 70여 년간 한국 바깥으로 강제 이주된 해외입양인 수는 정부 통계 추산 17만 명이 넘는다. 한국의 전체 생모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국가별 친생모 집단 가운데 그 규모는 가장 크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주목한 기록은 미비하며, 기술은 파편적으로만 인식되어왔다. 오랜 기간 대규모로 지속돼온 해외입양의 역사가 부지불식간에 당혹감과 호기심으로 저자를 향해 밀려오자, 그는 멈추지 않고 연쇄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자녀를 입양 보낸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강한 한국사회에서, 친생모 당사자가 해외입양 사실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그 경험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다면, 이들의 당사자 정치는 과연 가능한 것일까?” “한국사회는 왜 지금까지 수많은 여성의 존재에, 경험에, 나아가 이들을 상대로 벌어진 재생산 폭력의 역사에 이토록 무관심했던 것일까?”
이 책은 저자가 한인 디아스포라의 일원으로서 가진 관점에서 촉발된 질문의 집합이며, 해외로 아이를 입양 보낸 친생모의 경험에 주목하여 15년간 이루어진 인류학 및 사회학 연구에 입각한 최초의 학술서다. 이 책에서 지워진 존재를 불러내려는 시도는 저자가 주디스 버틀러를 원용해 설명하듯 “새로운 인식의 틀”을 요청하며, “변혁적인 되기의 정치”를 통해 “친생모의 고통과 상실을 정동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필수로 전제한다. 저자는 일반적이고 규범적인 이데올로기에서 탈주하여 친생모들의 존재를 다시 길어 올리고자 하며, 그들을 “모성을 지닌 ‘엄마’로 자연화하거나 고정된 존재로 화석화”하지 않고, 입양 전반에 관한 공적 담론과 더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