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의 갠지스강 앞에 선 일본인 여행자들은 같은 관광버스를 타고 왔지만 같은 구원을 찾지 않는다. 이소베는 죽은 아내가 남긴 환생의 말을 따라왔고, 기구치는 버마 전쟁의 기억을 안고 있으며, 누마다는 인간 아닌 생명에게 진 빚을 떠올린다. 미쓰코는 오래전 자신이 조롱했던 오쓰를 다시 찾는다. 『깊은 강』은 이 서로 다른 상처를 하나의 종교적 정답으로 묶지 않고, 같은 장소에 나란히 놓아 울림과 충돌을 만든다.
이 책은 엔도 슈사쿠의 마지막 장편을 ‘동서 종교의 화해’나 ‘인도에서 상처를 치유하는 여행’으로 빠르게 요약하지 않는다. 병실, 결혼 생활, 전쟁, 유년기, 대학 시절과 신학교의 고독을 인물별 시간으로 나누어 보여 주는 군상소설의 구조를 먼저 살핀다. 이소베의 뒤늦은 사랑, 기구치의 전쟁 기억, 누마다의 생명 윤리, 미쓰코와 오쓰의 불완전한 관계가 각각 어떤 질문을 맡고 있는지 읽으며, 어느 한 인물의 말도 작품 전체의 최종 교리로 확정하지 않는다.
오쓰가 신을 ‘양파’라는 사적인 이름으로 부르고 제도 밖에서 버려진 사람 곁에 머무는 장면은 강한 감동을 준다. 그러나 이 책은 그 행동을 곧바로 종교 다원주의의 모범답안으로 만들지 않는다. 1984년 인도의 정치 폭력, 관광객과 주민의 거리, 갠지스의 오염과 노동 같은 현실을 함께 놓고, 인도를 일본인 여행자의 자기 성찰을 위한 영적 배경으로 소비하는 위험을 따진다. 보편적 사랑을 말할수록 특정한 역사와 몸, 책임을 지우지 않아야 한다는 긴장을 끝까지 유지한다.
『깊은 강』을 덮고 나면 구원이라는 단어는 처음보다 덜 간단해진다. 죽음과 전쟁의 기억은 취소되지 않고, 사랑과 믿음도 완전히 정리되지 않는다. 대신 독자는 이해하지 못한 타인을 함부로 규정하지 않는가, 누군가의 희생을 칭송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가, 낯선 장소의 역사와 사람을 자기 감상의 배경으로 밀어내지 않는가를 묻게 된다. 감동과 불편함을 함께 붙들며 작품의 종교적 상상력과 윤리를 깊이 읽고 싶은 독자에게 필요한 해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