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가 다음 장이 사라진다면 독자는 무엇을 읽는가. 이탈로 칼비노의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는 한 권의 불량 제본에서 시작해 열 개의 미완성 소설, 번역과 위작, 출판과 검열, 작가와 독자의 관계까지 밀어붙인다. 『겨울밤의 독자』는 복잡한 장치를 단순한 포스트모던 기법 목록으로 정리하지 않고, 왜 계속 끊기는데도 독자는 다음을 원하게 되는지 그 욕망의 구조를 따라간다.
2인칭 ‘당신’이 실제 독자와 소설 속 남성 독자를 동시에 끌어들이고 밀어내는 방식, 열두 개의 현실 장과 열 개의 시작이 교대하는 배열, 제본 오류가 탐색의 동력으로 변하는 순간을 세밀하게 풀어낸다. 루드밀라의 자율적 읽기, 로타리아의 이념적 독서, 이르네리오의 비독서, 실라스 플래너리의 멈춘 책상을 나란히 놓으면 ‘읽는다’는 행위가 하나의 태도가 아니라 서로 경쟁하는 여러 방식임이 드러난다.
번역에서 2인칭의 거리감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종이책의 페이지와 제본이라는 물성이 전자책 화면에서는 어떤 기억으로 남는지까지 다룬다. 줄거리를 끝까지 이어 붙이는 대신 중단 자체가 작품의 형식이 되는 이유를 이해하고 싶은 독자, 칼비노의 장난스러운 구조를 감탄에서 한 단계 더 깊은 독해로 옮기고 싶은 독자에게 읽기의 설계도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