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베른의 다리, 낯선 포르투갈어 한마디, 오래된 책방에서 발견한 얇은 책. 그날 밤 고전어 교사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는 오랫동안 지켜 온 시간표를 벗어나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오른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지금의 삶을 버리고 떠나라’는 중년의 탈출 서사로만 읽기 쉬운 이유다. 『그레고리우스의 야간열차』는 그보다 더 복잡한 독서의 모험에 주목한다.
그레고리우스는 아마데우의 완성된 전기를 얻지 못한다. 짧은 사유와 편지, 가족과 저항 동료의 증언, 의학 기록과 침묵이 서로 어긋나는 가운데 타인의 생을 조립한다. 살라자르 독재와 비밀경찰의 역사, 적의 목숨을 살린 의사의 윤리, 사랑과 우정과 저항의 충돌을 살피며, 아름다운 문장이 그 문장을 쓴 사람의 실제 행동을 자동으로 보증하지 않는다는 긴장을 드러낸다.
독일어 소설 속 포르투갈어와 한국어 번역의 중첩, 베른과 리스본을 대비하는 북쪽의 시선, 2013년 영화가 내면 독백과 증언의 미로를 어떻게 압축했는지도 검토한다. 살아보지 못한 삶의 가능성에 매혹되면서도 타인을 자기 욕망의 거울로 만들지 않는 읽기, 돌아옴이 실패인지 변화인지 쉽게 결론 내리지 않는 독해를 원하는 독자에게 깊은 길잡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