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창문이 열리는 순간, 바다는 자유의 풍경인 동시에 더 정교한 감옥이 된다. 노틸러스호의 포로들은 인간이 직접 갈 수 없던 심해를 바라보지만 원하는 때 배를 떠날 수 없다. 『해저 2만 리』의 핵심은 미래 기술의 경이만이 아니라, 더 많이 볼 수 있게 된 사람이 과연 더 자유로운가라는 질문에 있다.
이 책은 아로낙스, 콩세유, 네드 랜드가 같은 바다를 전혀 다르게 읽는 장면에서 출발한다. 해저 창문과 도서관, 박물관과 오르간이 만든 호화로운 내부, 전기로 움직이는 독립국, 생물의 이름을 붙이고 표본을 모으는 목록의 욕망을 따라 지식과 소유가 만나는 지점을 살핀다. 네모의 국적과 과거를 둘러싼 빈자리, 억압받는 자들을 돕는 연대와 적선을 향한 복수, 자유를 얻기 위해 만든 배가 절대 권력의 공간이 되는 역설도 함께 읽는다.
산호 묘지와 얼음 아래의 질식, 거대 오징어와 마엘스트롬, 1871년 삽화와 완역·축약의 차이, 1954년 영화가 다시 만든 네모 선장까지 이어지며 과학소설과 정치적 우화의 층을 겹쳐 본다. 모험을 즐기면서도 기술의 소유권과 관찰의 권한까지 묻고 싶은 독자라면 노틸러스호의 창문을 이전과 다른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