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은 대한민국의 영토 안에 있을 때만 국민인 것이 아니다. 해외에 거주하거나 체류하는 재외국민 역시 대한민국 국민이며, 국가는 이들의 생명·신체·재산과 기본적 권익을 보호할 책무가 있다.
현재 약 240만 명에 이르는 재외국민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 현지생활은 한국에서의 생활과 크게 다르다. 언어, 법률, 행정절차, 노동환경, 주거환경, 의료체계, 교육제도, 사회관계가 모두 다르게 작동한다. 한국에서는 비교적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도 해외에서는 복잡한 법률적·행정적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특히 일부 재외국민 사회에서는 현지화된 관행과 제도적 공백이 장기간 고착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처음 해외에 체류하거나 거주하는 국민은 이러한 구조를 이해하기 어렵고, 정보 부족과 언어 장벽 속에서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재외국민의 피해는 언제나 공식 사건으로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금전거래, 투자, 동업, 임대차, 차용관계, 임금, 일부 현지인과의 재산분쟁 등에서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언어 장벽, 비용 부담, 자료 부족, 관계의 부담, 현지 제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신고나 소송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피해는 통계에 잘 잡히지 않지만, 피해자 개인에게는 실제 손해와 고통으로 남는다.
현행 영사조력법은 형사절차, 범죄피해, 사망, 실종, 해외위난상황 등 중대한 사건·사고에 대한 조력체계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재외국민의 현실은 중대한 사건·사고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많은 문제는 처음에는 민원이나 질의의 형태로 나타난다. 체류자격, 임대차, 노동, 의료, 교육, 가족관계, 상속, 보험, 국내 재산, 위임장, 현지 행정기관 통지서와 같은 문의는 단순한 생활문의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건화되기 전 단계일 수 있다.
이 책은 재외국민 보호가 이미 발생한 사건·사고에 대한 사후적 조력에만 머물러서는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공관이 모든 문제를 직접 해결하자는 것이 아니다. 공관이 현지법을 최종 판단하거나, 현지 소송을 대리하거나, 형사 변호를 수행하자는 것도 아니다. 핵심은 공관이 재외국민의 민원과 질의를 접수하고, 사안을 분류하며, 필요한 절차와 기관을 안내하고, 현지 전문가 또는 국내 법률구조 기관으로 연결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특히 대한법률구조공단 등 국내 법률구조 기관과의 연계는 이 책의 핵심 제안이다. 공단은 현지 변호사를 대신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지 변호사 상담 전 재외국민이 자신의 사건을 정확히 파악하고, 자료와 쟁점을 정리하며, 국내법과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을 확인하도록 돕는 중요한 사전 준비 절차가 될 수 있다.
또한 현지 사무원과 법률지원 보좌인력의 활용도 필요하다. 현지 사무원은 현지 언어와 행정환경을 이해하는 실무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고, 법률지원 보좌인력은 민원 접수, 사안 분류, 자료 정리, 공단 상담연계 준비, 현지 변호사 상담 전 쟁점 정리를 보조할 수 있다. 이러한 인력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관리한다면 장기적으로 재외국민 보호 전문인력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이 책자는 특정 기관이나 특정 공무원을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재외국민 보호의 현실과 제도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확인하고, 공관의 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