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가 도쿄 아사히신문에 1909년 1월부터 3월까지 연재한 스물다섯 편의 연작 산문 『영일소품永日小品』. '긴 봄날의 소품'이라는 제목처럼, 설날 아침의 문안 손님元日을 시작으로 길가의 뱀과 도둑, 감나무의 주인, 화롯불을 사이에 둔 대화, 무덤을 찾아온 고양이, 따뜻한 꿈과 낯선 인상, 모나리자의 미소, 짙은 런던의 안개, 그리고 마지막 편에서 셰익스피어 학자 크레이그 선생의 가르침을 회상하기까지 — 소세키가 살아낸 어느 긴 하루의 풍경이 그대로 펼쳐진다.
각 편은 길어야 몇 페이지 남짓의 짧은 단상이지만, 거기에는 장편소설에서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소세키의 얼굴이 있다. 낯선 하숙집에서 느낀 쓸쓸함, 돈과 인간에 대한 냉정한 관찰, 예술 작품 앞에서 느낀 당혹과 경이, 그리고 때때로 번뜩이는 특유의 유머와 풍자. 소세키는 이 작은 글들 속에서 일본 특유의 여백 미학과 서양적 관찰 정신을 자연스럽게 결합시킨다. 특히 「모나리사」「인상」「현물」 같은 편에는 그의 예술관이, 「과거의 냄새」「하숙」「크레이그 선생」 같은 편에는 런던 유학 시절의 기억이 담겨 있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 『마음』으로 이어지는 소세키 문학의 원형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소설가 소세키'의 무게에서 잠시 벗어나 '한 인간 소세키'의 목소리로 써 내려간 이 작품은, 짧지만 오래 여운이 남는 산문의 전형이다. 이 책은 일본어 원문과 한국어 번역, 낱말 풀이를 함께 실어 원문의 리듬과 의미를 함께 음미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바쁜 하루의 틈에 한 편씩 꺼내 읽기에도, 소세키 문학의 입문서로 읽기에도 더없이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