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인천에서 1913년 캘리포니아까지, 열일곱 해에 걸친 한 소년의 기록
야구에서 점수는 사람이 내야 한다. 공이 아무리 멀리 가도, 아무도 못 잡아도,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가서, 돌아서, 자기 발로 처음 자리를 밟아야 한 점이 된다.
청일전쟁이 지나간 자리에서 짐을 나르던 열세 살 정운은 이듬해 관비유학생으로 뽑혀 도쿄로 간다. 신분제가 없어져서 시험을 볼 수 있었고, 과거제가 없어져서 아버지가 가르친 한문은 쓸모가 없어진 참이었다.
도쿄에서 정운은 야구를 만난다. 그리고 그 놀이에 아직 정해진 이름이 없다는 것을 안다.
을미사변, 아관파천, 러일전쟁, 을사늑약. 정운이 조선말 스물세 줄을 채우려 애쓰는 동안 나라는 사라져간다. 그는 인쇄소에서 활자를 뽑고, 신문사에서 조선 기사를 일본말로 옮기고, 끝내 태평양을 건넌다.
아편전쟁부터 한일병합까지, 동아시아 삼국의 근대가 한 소년의 공책 위에서 만난다.